KCI등재
김대건 신부의 성사 사목활동과 행정 사목활동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19-264(46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았고,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치명했다. 사제로서 생활한 기간이 13개월이다. 본고는 이 13개월간 김대건 신부가 행한 일에 대한 검토이다. 여기서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의 범위를 확정하고 그 활동의 세세한 면면을 찾았다. 자료로는 기존의 문헌 사료는 물론, 지역답사를 겸하며 관련 지역의 전승까지 활용했다.
시작에 앞서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의 개념과 방향을 전환할 필요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의 체력과 외모, 성사 사목 태도, 사는 모습 등을 살폈다. 이어 시복 재판에 나온 증언을 토대로 김대건 신부의 성사 사목활동을 정리했다. 김 신부는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성사 사목활동을 했는데, 그 빈도는 반반이었다. 성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상호 간 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교회 내 신앙적 위치도 깊은 이들이었다. 이와 더불어 재판 증언은 김 신부의 성사 활동을 포괄적으로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남경문 등 증언자로 나오지 않았으면서 김 신부로부터 성사를 본 사람들, 또 신부의 옥중에서의 성사 사목 등을 짚고, 당시 교회 상황을 분석했다.
다음으로 김대건 신부의 특수 사목으로 신자들 조직 방법과 그 운영 방식을 밝히고, 김 신부의 인적 자원을 확인했다. 연평도 항해에 나갔던 사람들, 신부댁에서 봉사하던 여성 등 김 신부와 함께 일한 이들도 역시 상호 인적 관계가 긴밀하고, 신앙생활도 활발한 이들이었다. 김 신부는 이들 인력을 배치하여 교회를 점조직으로 운영해 갔다. 한편, 김대건 신부는 전교자금을 운영했는데, 포목과 은괴 등을 통한 물품으로 국내외 차익을 통해 자금을 늘리고자 했다. 신자들에게 돈을 대주어 배를 사서 장사하도록 하면서 바닷길을 개척·운영했다. 또한 김 신부는 부제 때부터 해오던 신학생 교육도 재개하여 이어갔다. 그는 이러한 교회 업무를 처리하면서, 조선교회 부주교의 역할까지도 감당했다.
김대건 신부는 기해박해 이후 폐허화된 교회를 재건했고, 두 선교사가 조선에 정착 활동할 기반을 다져 놓았다.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각기 다른 길로 입국했지만, 그가 개척한 해양로는 이후 조선교회와 세계교회의 연결로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 신부는 조선 조정에 새 문화에 대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조선인이 신부가 되는 길을 보여주었고, 한국인에게 꿈을 열어 주었다.
Father Kim Dae-geon was ordained priest on August 17, 1845, and was beheaded at Saenamteo on September 16, 1846. At the time of his martyrdom he has completed 13 months since his priestly ordination.
This article is a review of what Father Kim Dae-geon did during these 13 months. For my research, I used not only existing historical documents, but also information of local traditions of found during my field surveys on the geographic areas where father did his Pastoral work.
As a starting point it seemed important to me to present the need of changing the concept and direction of Father Kim’s pastoral activity. It also seemed important to me to highlight the strength of his physical appearance, his own personal way of conceiving and living the sacraments.
Then, based on the testimony from his process of beatification, I summarized Father Kim Dae-geon’s sacramental ministry. By this data, Father Kim carried out his sacramental pastoral activities betwee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and the regional frequency was half and a half.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formation for the reception of the sacraments had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each other, and they also had a deep religious position in the life of the local Church.
In addition, I pointed out the limitations of the witnesses during the process of beatification; those testimonies remain short and do not comprehensively reveal the fullness of Father Kim’s sacramental ministry.
To support this, I analyzed the situation in the church at the time by pointing to people who did not appear as witnesses, such as Nam Kyung-moon, and the work of pastoral ministry carried out in the prisons where the sacramental life was preached and prepared.
Next, I try to explain the originality of the pastoral work of father Kim Dae-geon specially the way he organized and interacted with the believers and prepared them as a resource for his work of evangelization.
Those who worked with Father Kim, such as those who went on a voyage to Yeonpyeong Island for finding the entrance for the missionaries and the women who served at the presbytery, also had close personal relationships and were active in their religious life.
Father Kim organized these belivers as a branch organization to run the church. On the other hand, Father Kim Dae-geon ran the funds of the mission, and he wanted to increase the funds through import profits with goods such as cloth and silver ingots. He opened and operated the sea route by lending money to believers to buy ships and trade. In addition, Father Kim continued to educate seminaries, which he had been doing since the time of his deacon. While handling these church affairs, he was even considered as the vice-bishop of the Joseon Church.
Father Kim Dae-geon rebuilt the church that was ruined after the Gihae persecution, an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two missionaries to settle down in Joseon. The sea route that Father Kim Dae-geon pioneered became a connection way between the Korean church and the world church, except Father Maistre and Father Yang-eop Choi entered Korea by different routes. Not only that, but Father Kim brought the shock of the new culture to the Joseon court. Above all, he showed the way for Koreans to become priests and opened up dreams for Korean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8 | 0.48 | 0.4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2 | 0.39 | 1.107 | 0.1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