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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변 전후 제주도(濟州島)의 방어태세 = Defensive Posture of Jeju Island around the Pirate Attack in 1555
저자
김기둥 (공군사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5-129(35쪽)
제공처
This study focuses on the defensive posture of Jeju Island around the Pirate Attack of 1555(Eulmyouwoebyeon, 乙卯倭變), the largest Japanese invasion of Joseon prior to the Imjin War, and its final battle, the Battle of Jeju Fortress. Upon the establishment of Joseon, Jeju Island was organized as a single garrison command, forming a defensive system based on Banghoso(防護所) guard posts installed on major ports. With the Pirate Invasion on Three Ports in 1510(Sampowoeran, 三浦倭亂), the Joseon government inspected the defensive posture on the southern coast of the peninsula, including Jeju Island. Jeju Island sought to reinforce its defense on its own, but the resource of the island was insufficient to construct preparatory measures against foreign invasion. Thus, the Joseon government attempted to enhance the defense of the island with reinforcements from the mainland. A portion of the on-duty cavalry in Jeolla Province stationed in Jeju Island during the season of fairwind, and the cost was paid by the mainland as well. In addition, for the swift, large-scale reinforcement of troops in emergency, the government appointed the Garrison Commander of Garipo and the Magistrate of Jindo as Gyewonjang(繼援將), the commander of the relayed reinforcement. During the early stage of the Pirate Attack in 1555, the Japanese Pirates stormed the coasts of Jeolla Province, but retreated to the open sea and invaded Jeju Island. The operation of the Relayed Reinforcement system was delayed, as the port of Gariopo suffered damages from the invasion and the reinforcement had to be organized from the other regions. Still, the Garrison commander of Garipo maintained his position as the commander of the relayed reinforcement. The residents of Jeju Island, under the command of Kim Sumun(金秀文), the Magistrate of Jeju, waited for the reinforcements in the siege of Jeju Town Wall. During the siege, they started engaging the Japanese pirates, and successfully repelled them by breaking the pirates’ ranks with Hyoyonggun(驍勇軍), the Army of Brave Warriors, under the cover of arrows. The pattern was the same with that of the Battle of Yeongam Fortress. The victory in the Battle of Jeju Fortress was an unexpected one, and it could not be the reason behind the defense plan against large-scale invasions. Thus, even though the relayed reinforcement system was not activated on time during the Pirate Attack in 1555, it remained as the main frame of the defense of Jeju Island. As a result, the defensive posture of Jeju Island was not much changed before and after 1555. Considering these facts, the account of Ryu Seongryong(柳成龍) that Jeseung Bangnyak system(制勝方略) was introduced with the operation of Kim Sumun during the Attack in 1555 should be reconsidered.
더보기이 글은 임진왜란 전 조선이 겪었던 최대 규모의 왜군 침입인 을묘왜변을 전후한 제주도의 방어태세와 왜변의 마지막 전투인 제주성전투를 다루었다. 조선 건국 후 제주도는 하나의 진관으로 편성되었고, 주요 포구에 설치한 방호소(防護所)를 중심으로 한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제주도는 별도의 보법 규정을 적용받으면서 병력을 최대한 동원했다. 3포왜란을 계기로 조선은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의 방어태세를 점검하였다. 제주도는 나름대로의 방어강화책을 모색했지만, 섬의 물력이 대규모 적의 침입에 대한 대비 태세를 구축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조정은 육지로부터의 지원을 통해 섬의 방어태세를 강화하고자 했다. 전라도의 상번 기병 중 일부가 ‘호남원병’으로서 풍화시 제주도에 입도해 주둔하였는데, 그 비용 역시 육지에서 부담하였다. 또한 조정은 유사시 대규모 병력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가리포첨사와 진도군수를 제주도의 계원장(繼援將)으로 삼았다. 을묘왜변 발발 초기 전라도 연안을 휩쓸었던 왜군은 영암성전투의 패배로 해상으로 퇴각했다 제주도를 침공했다. 계원체계의 작동은 가리포가 왜군의 공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다른 지역의 병력으로 구원군을 편성하면서 지체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가리포첨사가 계원장을 맡는다는 개념은 유지되었다. 제주도의 군민(軍民)은 김수문(金秀文) 목사의 통솔 아래 제주읍성에서 농성하면서 구원군을 기다렸다. 이들은 농성 중 틈을 타서 왜군과의 본격적인 교전을 개시했고, 화살의 엄호 속에 효용군(驍勇軍)으로 왜군의 진영을 와해시키면서 격퇴에 성공했다. 이러한 전투 양상은 영암성전투와 동일했다. 미약한 병력을 토대로 한 제주성전투의 승리는 예상치 못한 일로 대규모 침입에 대한 방어책의 근거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을묘왜변 중 계원체계가 적시적으로 작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왜변 후에도 그것은 제주도의 방어에서 주요 축으로 존속했다. 결과적으로 을묘왜변을 전후로 한 제주도의 방어태세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내용을 감안한다면 을묘왜변에서 김수문의 활동을 계기로 제승방략이 도입되었다는 유성룡(柳成龍)의 설명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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