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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오 차상찬의 천도교 활동에 대한 고찰 = Reflecting on the Cheondogyo-related activities of Cheongo Cha Sangchan
저자
성주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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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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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87-22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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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article examines the youth movement of Cha Sangchan's Cheondogyo and his role in the culture movement in Cheondogyo of the 1920s. Cha was born in Chuncheon, Gangwon Province. Under the influence of one's older brother Chasanghak, he became a Cheongyoist in 1904. At the time, the movement was known as ‘Eastern Learning’ (Donghak), and continued to be subject to government repression. The fact that, amidst such circumstances, he nonetheless entered the movement is an indicator of his belief in the ideas and religious doctrines of Cheondogyo. These being the respect for humanity idea of Shicheonju, the Hucheongaebyeok Heoksae idea, and the national subject bogukanmin idea. Believing in such ideas, he became Cheondogyoist, and participated in its youth movement, playing a central role in the culture movement of Cheondogyoism.
Cha was a participant from when the first Cheongdogyoist youth group (the Cheondogyocheongnyeongyorigangyeonbu) was formed. He acted as both a minister and a cadre at the enter of the movement. Thereafter, he was a central implementation committee member, and a member of the sectoral committee. Midway through 1926, the group divided, and he became a member of the implementation committee of the new faction. While from 1931-4, we acted as a central implementation committee member for the unified group, the Party of Young Cheondogyoists. There after, he is believed to have remained a committed member of the rank and file of the party. He also participated in the Cheondogyo Youth Society, and the Young Cheondyogyoist Society (a sectoral group in the Cheondogyo Youth Party), as well as the as a central member of the Joseon Labour Group. Yet, while he was active in the Cheondogyo youth movement and sectoral organizations, there is little sign of him playing an actual role in these organizations’ activities at home and abroad. This is because his main work was as editor of the Gaebyeoksa.
Cha was responsible for an important part of the culture movement within Cheondogyo’s youth organizations of the 1920s. He worked on Gaebyeoksa, he was a Jeonggyeongbu Juim, a news correspondent, a cadre, a publisher, and an editor. Indeed, he was the actual editor of Gaebyeoksa, and in such a capacity led the ‘Foundational Survey of Joseon Culture’, and through fieldwork ensured it was written. The survey sought to correct Japanese imperial distortions regarding Joseon culture, and Cha played the central role in this project. In addition, he wrote for the magazine that Gaebyeoksa published, as well as Cheondogyo’s magazine, and other general socially concerned publications about Joseon’s history and other topics to promote national pride. He can thus be considered a pioneer of the Joseon culture movement of the 1930s.
본고는 청오 차상찬의 천도교 청년운동과 1920년대 천도교에서 전개한 문화운동에서 그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한 차상찬은 형 차상학의 영향으로 1904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당시에는 동학이라 불렸으며, 정부로부터 여전히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천도교에 입교하였다는 것은 천도교의 사상과 종교적 교리에 공감하였음을 의미하다. 즉 천도교의 시천주의 인간존중사상, 후천개벽의 혁세사상, 민족주체의 보국안민사상 등을 수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공감하고 천도교에 입교한 차상찬은 천도교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천도교에서 전개한 문화운동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차상찬은 천도교 첫 청년단체인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창립부터 참여하였으며, 간의원과 간무로 중앙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차상찬은 천도교청년당의 중앙집행위원과 부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대 중반 천도교청년당이 신구로 분화되자 차상찬은 신파의 천도교청년당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 통합단체인 천도교청우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1934년까지 활동하였다. 이후에는 일반 당원으로 그 역할을 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차상찬은 천도교청년회와 천도교청년당의 부문단체인 천도교소년회, 조선농민사, 조선노동사 중앙 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와 같이 차상찬은 천도교 청년단체와 부문단체의 주요임원으로 참여는 하였지만, 이들 단체의 대내외 활동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개벽사의 실질적 편집인으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차상찬은 1920년대 천도교 청년단체에서 전개한 문화운동에서는 한 축을 담당하였다. 차상찬은 개벽사의 사원, 정경부 주임, 특파원, 간부, 발행인, 편집인 등 다양한 직책으로 시작과 끝을 같이 하였다. 그는 개벽사의 실질적 편집을 담당하면서 핵심적인 사업인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를 그 중심에서 현장을 답사하고 『개벽』을 통해 발표하였다.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조선의 현실을 바로 잡고자 하였는데, 차상찬이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개벽사에서 발행한 잡지, 천도교 관련 잡지, 일반 사회 잡지 등에 조선의 역사 사건과 인물 등을 비롯하여 조선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글을 기고하였다. 이러한 차상찬 등 개벽사의 역할은 1930년대 전개된 ‘조선문화운동’의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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