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병자호란 講和 협상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 = Developments of the Negotiation Path of Truce during Byeongja Horan and Joseon's Reaction
저자
허태구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51-88(38쪽)
KCI 피인용횟수
22
제공처
소장기관
The present thesis is a study of the negotiation path of truce during Byeongja Horan(丙子胡亂) with reference to Qing's strengthening of war potential. The perspective of this study is to reconsider Joseon's action towards Qing as 'Acting upon courtesy and obligation(禮)'.
Precedent studies which covers Byeongja Horan as a subject, generally adjust their focus on the seize of Namhan Sanseong(南漢山城). Therefore the main issue of the negotiation path between Joseon and Qing, especially the format of a sovereign's message to a foreing state(國書), has not been analyzed sufficiently, and the public sentiment about the negotiation in regard to cause of these certain reactions were also neglected as well.
Ever since Qing's troop besieged Namhan Sanseong, as much as the war potential reinforced, Qing government tighten up the pressure toward Joseon. Coming into mid-January of 1637(15th year of King Injo's reign), the mismatch between both countries' military strength, was zeroing in on Joseon's defeat. It seemed there was no other way to maintain Joseon dynasty than excepting Qing's terms of desire which Juhwa-pa(主和派) insisted. During the seize of the Namhan Sanseong fortress, cession of territory or the size of war reparation were not the issues that were most discussed in truce negotiations. Determining the format of a sovereign's message to a foreing state(國書) which was to be submitted to the Qing authorities, and the process of surrendering, were. Qing strongly requested that the document should feature the Joseon side referring to itself as (Qing's) vassal. And they also demanded that King Injo should personally come out of the fortress and pay respect and surrender, and that the officials who had been opposing to the idea of peace be extradited to the Qing's capital.
At the time, the very prominent issue for the sovereign and subjects of Joseon was not the alternative of resistance or submission but the formality of surrender. For most Joseon people adhereing to the 'Moral obligation towards Chinese Ming dynasty'(對明義理) and referring to itself as Qing's vassal on a sovereign's message to a foreing state(國書) was an un-separatable matter. Thus Cheokhwa-pa(斥和派) persisted the 'Moral obligation towards Chinese Ming dynasty'(對明義理) and refused to surrender. Their concern was not about Ming dynasty's retaliation, but about the collapse of morality and appraisal from the descendants.
이 논문은 병자호란 당시의 講和 협상 과정을 淸軍 전력의 증강과 연관하여 살펴보고, 협상 당사국인 조선의 대응을 ‘禮의 실천’이란 관점에 주목하여 재검토한 연구이다.
병자호란과 관련된 선행 연구는 주로 남한산성의 농성을 주로 청의 침략에 대항하는 조선의 항전에만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따라서 강화 협상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國書의 형식 등에 대해 당대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분석이 시도되지 않았다.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이래, 자국의 전력이 속속 강화됨에 따라 조선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점차 높여 갔다. 인조 15년(1637) 1월 중순에 이르면 병자호란의 승부는 양국 전력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인해 이미 결판난 상태였다. 主和派의 주장대로 청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 한, 조선이란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한산성 농성시 강화 협상의 쟁점이 되었던 것은 영토의 할양이나 전쟁 배상금 등의 문제가 아니라 국서의 형식과 항복의 절차였다. 대청제국의 수립을 의례적 절차에 의해 확인받으려고 한 청은 稱臣을 표기한 國書, 인조의 出城 항복, 斥和派의 압송을 집요하게 조선에 요구하였다.
당시 강화 협상에 임한 조선의 君臣이 끝까지 고민하였던 문제는 항복의 여부라기보다, 禮를 통해 구현되는 항복의 형식이었다. 대다수 조선인의 입장에서 볼 때 對明義理라는 大義와 稱臣을 표기한 국서의 형식 등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斥和派는 戰況이 이미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대명의리의 고수를 외치며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였다. 이들이 우려하였던 것은 明의 問罪나 보복이 아니라, 대명의리의 포기를 통한 윤리와 문명의 붕괴였으며, 天下와 後世의 평가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199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7 | 0.87 | 0.96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98 | 2.253 | 0.4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