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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민주화의 결과 비교: 영국 명예혁명의 혁명적 결말과 한국민주화의 민주적 이행과 공고화의 비교 = Comparing Results of Revolution and Democratization: Revolution Settlement and Consolidation and Transition of Democratization
저자
김용직 (성신여자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7-96(40쪽)
KCI 피인용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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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관
This is a comparative research of two grand historical incidents of democracy, Britain’s Glorious Revolution(1688-9) and Korea’s 1987 Democratization. Although these two historical cases are far apart in the history of global revolution and democratization, striking similarities are found. We claim that these cases, despite of differences, they belong to the same category of revolutionary change, i.e, democratization by compromise.
First, there are two distinct political forces gathered around key parties and they emerged as key agents that recognized historical mission of making political compromise. Challenge groups that have evolved into a coherent threat to authoritarian system staged new level of struggles. Whigs emerged as a strong enemy of royal power in the late 1680s. Then in 1688 key compromise was made between Tories and Whigs that enabled them to invite William of Orange in parliament’s fight against King James.
Compromise was a major aspect that defined Korea’s case as well. Korea’s democratization in 1987 was a result of compromise of moderate reformists in government and elites of oppositional parties. Whereas British Revolution in 1689 ushered England to the new stage of monarchy, Korea’s democratization was not decisively achieved by 1987 but was ongoing processes for at least ten to fifteen years to come.
Historical cases of two nations shared many key common traits.
Both cases were derived from long-term socio-economic changes, England’s rise of the gentry and Korea’s emergence of the middle class. They shared common roots of precedent cases of extreme disorder and conflict, English civil war(1641-60) and Korea’s Kwangju Incident(1980). The most salient finding is in both cases compromise and political pacts are key aspect of constitutional arrangements.
Korean constitutional reform of 1987 has been a lasting icon and motive-force that led a vital democratic transition path of Korean Democracy for a decade. As a resut of revolution in 1688-9 English leaders could launch a new constitutional governance system, i.e., King-in-parliament, which could lead England into the next phase of prosperity and democratization over a century. Compromise by political elites was a major factor of settlements for both England and Korea.
본 연구는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과 20세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타협민주화라는 민주화의 비교헌정사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영국의 명예혁명과 한국의 민주화는 그것이 발발한지 30년간 큰 변화 없이 중요한 개혁안들이 타결되었다. 특히 중요한 사안들은 사건 초기1-2년 사이에 큰 타결이 이루어졌고 그 주된 결과는 혁명이후 적어도 수십 년 이상 (영국은 150년 이상) 유지되었다. 한국의 민주화의 결말도 1987년 헌정체제로 확정된 후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 두 사건은 혁명과 민주화라는 상이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타협정치라는 요소를 가졌다는 공통점을 보이는데 본 연구를 통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두 나라의 사건들 ― 17세기 혁명과 20세기 민주화 ― 은 타협과 협약의 정치라는점에서 유사성을 가졌다. 명예혁명은 타협의 성격이 강하며 이에는 윌리엄과 영국 의회와의 타협, 그리고 다시 두 정당 토리와 휘그와의 타협에 의해서 입헌군주제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체제가 탄생했다. 반면, 한국은 1987년 민주화에서 권위주의 정부 내 온건파와 민주화운동의 타협적 정당세력들이 타협을 하였고 이는 6월 항쟁과 6.29 민주화선언이라는두 대조적 흐름들이 결국 주요 정당지도자들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어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으로 나타났다.
둘째, 두 사건은 하나는 정치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였고 이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는 전자는 혁명적 결말로, 후자는 민주적공고화로 달리 나타났다. 영국의 혁명결말이 가장 큰 결과는 국왕과 의회와의 17세기 장기적 갈등관계가 결국 의회가 지배권을 확립하는결과로 결정되어 전제군주제가 입헌군주제로 바뀐 것이다. 반면, 한국의 1987년 민주화는타협민주화로 전개되어 국회와 사법부의 권한이 강화된 자유민주적 헌정체제로의 복귀가이루어졌다. 한국 민주화는 민주적 이행과 민주적 공고화라는 두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첫단계는 1987-1988년에 둘째 단계는 1998년 등장한 김대중 정부시기까지 걸쳐서 전개되었다.
셋째, 영국과 한국의 두 사건의 결과는 타협민주화임에도 차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즉, 영국의 명예혁명은 “의회내 국왕제”라는 특이한 입헌군주체제로 귀결되었고 반세기 이상지속된 영국 국왕과 의회의 갈등과 분열을 2년 만에 총결산하였다. 주요 성과인 혁명 결말은 (1)국왕계승의 원칙을 확정한 윌리엄과 메리의 공동군주제, (2)정치적 타협 결과로 권리장전과 관용법제정, 그리고 (3)의회가 지배권을 가진 “의회내 국왕제”로서의 입헌군주제의정착이다.
반면에, 한국의 1987년 민주화의 결과는 둘로 나뉜다. (1)단기적으로 헌법개정에 따른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로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권위주의가 퇴출되는 민주적 이행과 (2)중장기적으로 후속정부에 의해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안정화되는 민주적 공고화로 후자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으로 달성되었다.
결론적으로 명예혁명은 장기적으로 영국의 정치체제를 150년 동안 발전시켜가는 큰 기틀을 다진 성공사례로 평가되며 한국 민주화도 30년 동안 정치경제 체제의 발전을 이끌어 온원동력이자 구조적 기반으로 평가될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5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2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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