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의암 손병희의 독립국가사상 - 동학혁명에서 3·1혁명으로 -
저자
임형진 (경희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43(39쪽)
제공처
동학혁명 시기에 의암 손병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고 지도자였다. 혁명을 함께한 동료들과 스승님마저 체포되어 처형당했지만 그는 살아서 동학을 지켜내야 했다. 정부의 추적을 피해 일본에서 체류하면서도 그는 국민의 개화의식과 민도 향상에 전념하였다. 개화혁신운동과 언론 출판 및 교육사업에 투신한 것이 그것이다. 1910년 나라를 상실한 뒤에도 그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드디어 3·1혁명으로 그 결실을 보았다. 3·1혁명 이후 탄생한 임시정부의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제’의 연원은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시대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컸던 손병희의 행적에서도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동학혁명과 일본 체류시기의 경험 그리고 독립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더 이상의 왕정이 아닌 공화정의 사회가 앞으로의 국가가 될 것을 자각한 것이다. 또한 통치의 과정은 가장 민주주의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혁명의 경험이 3·1혁명으로 승화된 모습이 그 반증이다. 그것이 동학과 천도교로 이어져 오는 정치이념이었다.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손병희의 삶을 추적해 보는 것은 혁명가, 종교개혁가, 독립운동가에 그치는 것이 아닌 민주공화정의 탄생에 기여한 바를 찾는 데에 있다. 분명 그의 경험은 국민이 주인인 사회이자 국민이 하늘과 같이 존엄한 존재(인내천)로 하늘처럼 대접받는 이상사회(사인여천) 즉, 민주공화정을 향한 걸음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보기During the Donghak Revolution, Uiam Son Byung-hee was the only surviving supreme leader. Although his colleagues and even his master who had participated in the revolution were arrested and executed, he had to survive and defend Donghak. While he was staying in Japan to avoid being pursued by the government, he devoted himself to improving the people’s awareness of enlightenment and the mindset of the people. That is why he devoted himself to the enlightenment movement and the media publishing and education business. The origin of the ‘democratic republic’ specified in the constitu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which was created after the 3·1 Revolution, can be found in many places, but it can be said that it can also be found in the deeds of Son Byunghee, who was more influential than anyone in that era. In other words, his experiences during the Donghak Revolution and his stay in Japan, and in the process of preparing for independence, realized that a republican society, not a monarchy, would become the nation in the future. Also, the process of government should be conducted in the most democratic way. The experience of the Donghak Revolution sublimated into the 3·1 Revolution is proof of that. That was the political ideology that was passed down to Donggwa and Chondogyo. In commemo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his martyrdom, tracing the life of Son Byung-hee is to find out what contributed to the birth of a democratic republic, not just a revolutionary, religious reformer, and independence activist. It is because he believes that his experience was clearly a step toward a democratic republic, that is, an ideal society in which people are as dignified as the heavens (Innaecheon) and treated like the heavens (Sainyeocheon)
더보기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