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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용법과 어휘 추세―한국문집총간 정집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usage and the trend of the Confucian terminology “Iyonghusaeng[利用厚生]” in the Jose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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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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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625(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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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을 활용해 조선시대 이용후생의 용법을 분석하고 어휘 추세를 검토한 것이다. 본래 『서경』에 출처를 두는 경학 용어 이용후생은 관습적으로 조선후기 실학의 유파로서 이용후생파를 가리키는 역사적 명칭으로 활용되어 왔다. 더불어 조선말기 동도서기의 철학적 본질로서 조선후기 이용후생론이 소환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실학의 이용후생파이든 조선말기 동도서기의 이용후생론이든 조선시대 이용후생에 관한 부분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이용후생의 용법을 한국문집총간 정집에서 살펴보면 이이에서 곽종석까지 전체 99건의 기사 건수가 검색된다. 연대기 자료에서 이용후생을 검토한 선행 연구는 조선시대 이용후생이 주로 조선후기 정조와 조선말기 고종의 치세에 분포했음을 규명했는데, 이러한 어휘 추세는 문집 자료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용후생 기사 빈도수 상위 랭킹 문집의 저자는 조선후기의 정약용, 정조, 박지원, 홍양호와 조선 말기의 신기선, 김윤식, 곽종석이다. 이용후생은 정조시기 전까지 대체로 미약했으나 정조시기 북학과 연결되어 본격적으로 발화되었고 고종시기에는 신문물의 수용과 신학문의 진흥을 둘러싸고 적극적으로 언명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용후생의 사상사는 조선후기 북학과 조선말기 동도서기를 모두 포괄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장기적인 현상이었다고 하겠다.
이용후생의 어휘 추세를 검토하기 위해 유관 어휘로 실사구시, 개물성무, 명물도수를 선택해 각각을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어휘 추세 비교는 흔히 조선후기 실학의 유파로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가 거론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용후생과 개물성무, 이용후생과 명물도수의 어휘 추세 비교는 이용후생의 용법 분석 과정에서 개물성무와 명물도수가 이용후생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프로 구현된 어휘추세를 검토한 결과 실사구시는 이용후생과 친근성이나 상관성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고, 개물성무는 이용후생과 어휘 추세 패턴은 다르나 긴밀한 상관 관계를 읽어낼 사례를 확인하였고, 명물도수는 이용후생과 어휘 추세 패턴이 거의 동일하나 개물성무에 비해서는 이용후생과의 상관 관계를 읽어낼 사례가 부족하였다.
향후 조선시대 한문 문집 자료와 근대 매체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이용후생의 개념사가 더욱 명확해지기를 기대한다.
This article reviews the long-term trends in the usage of the word “Iyonghusaeng[利用厚生]” in the Joseon Dynasty, using the Hangukmunjipchonggan[韓國文集叢刊] published by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韓國古典飜譯院]. Originally, Iyonghusaeng[利用厚生] sourced from 『Seogyeong[書經]』 means the conveniencies of life attained by the promotion of arts and commerce[利用] and the enrichment of living characterized by the abundant comforts and luxuries[厚生], and it has been conventionally used as a historical term referring to the specific school of Korean Silhak[實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However, it is undesirable to have only partial understanding of it in consideration of its long-time linguistic phenomenon in the Joseon Korea.
If we look into the usage of this term in the Hangukmunjipchonggan[韓國文集叢刊] collection, a total of 99 articles from Ii[李珥] to Kwak Jong-seok[郭鍾錫] are searched. Prior studies from chronological data found that the term Iyonghusaeng[利用厚生] was mainly disseminated in the reigns of King Jeongjo[正祖] and King Gojong[高宗]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is trend is also evident in the data of personal anthology. The authors of the high-ranking articles on the frequency of Iyonghusaeng[利用厚生] articles are Jeong Yak-yong[丁若鏞], Jeong Jo[正祖], Park Ji-won[朴趾源], Hong Yang-ho[洪良浩], Shin Ki-seon[申箕善], Kim Yun-sik[金允植], and Kwak Jong-seok[郭鍾錫] and so forth. The idea of Iyonghusaeng[利用厚生] began to attract Korean intellectuals in the reign of King Jeongjo, and it was frequently mentioned over the acceptance of new culture and the promotion of new learning in the period of King Gojong. In this sense, the history of idea of Iyonghusaeng[利用厚生] needs to be studied in view of the long-term trend from the late Joseon Korea to the modern Korea.
In order to examine the trend in the usage of Iyonghusaeng[利用厚生], a task was performed to compare it with each of the relevant vocabularies such as Silsagusi[實事求是], Gaemulseongmu[開物成務], and Myeongmuldosu[名物度數]. The comparison of the trend in Iyonghusaeng[利用厚生] and Silsagusi[實事求是] was caused by considering the situation in which Gyeongsechiyong[經世致用], Iyonghusaeng[利用厚生], Silsagusi[實事求是] were often discussed as a school of Silhak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omparison of the trend in Iyonghusaeng[利用厚生] and Gaemulseongmu[開物成務], and in Iyonghusaeng[利用厚生] and Myeongmuldosu[名物度數] was because some cases were found that Gaemulseongmu[開物成務] and Myeongmuldosu[名物度數] were closely related to Iyonghusaeng[利用厚生]. As a result, we could hardly find any closeness to or correlation with Iyonghusaeng[利用厚生] of Silsagusi[實事求是], and the case of reading a close correlation with Gaemulseongmu[開物成務] and Iyonghusaeng[利用厚生] was confirmed. The trend pattern of Myeongmuldosu[名物度數] was almost the same as that of Iyonghusaeng[利用厚生], but there were insufficient cases to read the correlation with Iyonghusaeng[利用厚生] compared to Gaemulseongmu[開物成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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