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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초기의 정인홍 = Jeong In-Hong in Early Gwanghae-gun Period
저자
오이환 (경상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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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7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15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43-374(32쪽)
KCI 피인용횟수
2
제공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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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대북정권의 정신적 지주였던 정인홍의 생애와 사상을 광해군 시기에 한정하여 조명해 보고자 하는 연구의 첫 단계로서, 대북정권이 성립하기 전인 광해군 즉위년의 임해군 역모 사건으로부터 그 3년의 晦退辨斥 시기까지 4년간을 다룬다. 간행된 『來庵集』의 저본을 비롯한 근년에 발견된 고문서들을 주된 자료로 삼아 편년 형식으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광해군 시기 전체에 걸쳐 왕실 내부의 인물이 관련된 역모사건에 대해 남인과 서인은 천륜의 명분을 중시하는 全恩論을 주장한 반면, 북인은 군신의 명분을 우선시하는 討逆論으로 기울었다. 이는 성리학적 명분론의 문제로서 예학논쟁의 성격을 지닌 당쟁이었다. 전은과 토역의 논쟁은 마침내 明에 대한 事大 의리와 함께 인조반정의 양대 명분 중 하나로 되었다.
임해군의 逆獄에서 전은론자들의 주장은 억울하게 형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며 임해군은 선조의 여러 왕자 중에서도 광해군과 어머니를 같이 한 유일한 형제이므로 義와 恩을 아울러 극진히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인홍은 임해군에 대해 전은론을 주장한 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옥사가 성립된 후에 전은을 입에 담는 자가 역적을 비호하는 사심이 있는 것이 아니면 임금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신하의 公義요, 은혜를 펴는 것은 임금의 私情이기 때문이다.
광해군 3년 3월에 우찬성 정인홍은 사직차를 올려, 자신의 스승인 조식 · 성운의 학문과 인격이 이황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 폄하된 점을 해명하면서, 지난해 문묘에 종사된 조선조의 5현 중 이언적과 이황, 그 중에서도 주로 이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자 성균관 유생들이 첫 상소를 하고, 뒤이어 조정의 전 ·현직 관료와 지방 유생들이 계속 의견을 개진하며 정인홍을 성토하였다. 광해군은 계속적인 성토의 움직임을 이와 같은 기회를 틈타 정인홍을 숙청하기 위한 정쟁으로 간주하였다. 8월 성균관에 걸려 있었던 정인홍의 유적 삭제에 대한 방이 왕명에 의해 철거됨을 계기로 하여 마침내 晦 · 退 비판으로 말미암은 소란은 수습되었다.
This is the first step of a study, which set limits to the Guanghae-gun period, to elucidate the life and thought of Jeong In-hong who was the spiritual prop of the Daebuk regime, It covers the period from the conspiracy of Imhae-gun which occurred in 1608, the year of Guanghae-gun's enthronement to the critique on Yi Eun-jeog and Yi Hwang in 1611.
Through the whole Guanghae-gun period, Seoin and Namin parties asserted benevolence stressing on the moral obligations of man's natural relations, whereas Bugin party asserted punishment which put priority on the moral obligations between sovereign and subject. It was the matter of Neo-Confucian moral obligations and a party strife with the character of dispute on decorum. At last, the dispute on benevolence and punishment became one of the two main causes of Injo coup and could be considered as a former step of the dispute on decorum in latter Yi dynasty.
In the case of Imhae-gun's conspiracy, the persons who asserted benevolence emphasized to protect the innocent and apply full grace and justice to Imhae-gun who was the only maternal brother of Guanghae-gun among the many princes of King Seonjo. Jeong In-hong criticized severely the ministers who asserted benevolence on Imhae-gun. According to him, when the treason case was materialized, the persons who talked about benevolence were going to protect the criminal with selfish motives or took no notice of king. Because it is common duty of the subjects to liquidate the traitor and it is the personal sympathy of the sovereign to give grace to him.
In March of the third year of Guanghae-gun's rule, Jeong In-hong submitted his resignation to the king, explicating the fact that his teacher Jo Shik's and Seong Oon's learning and personality had been unjustly distorted and devalued by Yi Hwang, he sharply criticized Yi Eon-Jeog and Yi Hwang, mainly Yi Hwang, among the five sages who were decides last year to be co-worshipped with Confucius in Munmyo service.
Soon after his resignation was submitted, the students of Seonggyunguan presented the first memorial to the king and the court officials of past and present chairs and the Confucians of provinces continued to censure Jeong In-hong. Guanghae-gun considered these movements of continual denounce as a political strife to purge Jeong In-hong and took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When the expurgation notice of Jeong's name from the roster of Seonggyunguan was removed by king's order on August 12, the turmoil due to the critique on Yi Eun-jeog and Yi Hwang was settled at last.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17-01-23 | 통합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2-2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한국문화 -> 퇴계학과 유교문화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8-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학국문화 -> 퇴계학과 한국문화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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