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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대구의 문인화가 긍석 김진만(肯石 金鎭萬, 1876~1933) 기명절지화 연구 = (A) Study on Ki-myung-chul-ji-wha by Geungseok im Jin-man(1876~1933), the literary artist of Daegu in Early modern age
저자
이인숙 (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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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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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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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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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51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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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ung-chul-ji-wha(器皿折枝畵) was born with the backgrounds of the public culture in Seoul in the 19th century, and so that it is considered as a transitional painting which characterizes the emotion of study room in Joseon period and the life senses of modern times at the same time. Ki-myung-chul-ji-wha was in fashion for a short time in Seoul, during the late of 19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20th century, and it started to appear in 1910s in Daegu for the first time and after it was painted continually till the end of 1900s. Geungseok Kim Jin-man(肯石 金鎭萬, 1876~1933) is one of the important artist in the field of painting and calligraphic works in Daegu during the modern times. He left works as follows; <Dongwha temple monument>(in 1931), calligraphy, four gracious plants, rocks, flowers, Ki-myung-chul-ji-wha and so on. But no research on his life and calligraphy has been done till now. Kim Jin-man mainly painted four gracious plants(bamboo, plum, orchid, chrysanthemum) and unusually he left quite a lot of Ki-myung-chul-ji-wha. Ki-myung-chul-ji-wha of Kim Jin-man in 1920s and 1930s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Korean modern art history and in paintings in the literary artist's style in Daegu during modern and contemporary time with its continuity of uniqueness of traditional paintings and local characteristics of art.
This paper is the very first thesis on Kim Jin-man. The followings are researched in this paper; his life as an artist, the present status of his Ki-myung-chul-ji-wha which were grasped till now, analyzing the themes of the paintings, studies on style and icons of paintings, and his influences on the painting groups of literary artist's style in Daegu. Kim Jin-man is an artist in the literary artist's style, and he was conferred posthumous honors,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in 1977)'. As an independentista he was imprisoned for 8 years and 9 months under Japanese imperialism, and his brother and three sons actively participated in anti-Japan movement.
Seokjae Seo Byeong-oh(石齋 徐丙五, 1862~1936) is considered as the person who introduced Ki-myung-chul-ji-wha in Daegu for the first time. But he didn't paint Ki-myung-chul-ji-wha that much, and Kim Jin-man started painting Ki-myung-chul-ji-wha with Seo Byeong-oh's style and producing them a lot, he made his own style. Compare to Seo Byeong-oh's calligraphic, elliptical, and tough stroke, Kim Jin-man's works are still calligraphic but he secured his Forming-through-idea(寫意) expression and finally made his own Ki-myung-chul-ji-wha in literary artist's style. These characteristics are very different from the Ki-myung-chul-ji-wha in Seoul at that time, which was ostentatious, decorative, and detailed painting style.
Kim Jin-man's Ki-myung-chul-ji-wha in literary artist's style was preferred and had a great demand on the basis of the local character in Daegu, in which existed a lot of literary artists who had traditional thoughts of literary person, and he mainly chose the four gracious plants, as well. Since then, Ki-myung-chul-ji-wha were painted continually among the group of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in Daegu throughout 1900s, and it can be taken in that Kim Jin-man had the most direct influence on this.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는 근대적 생활 감각과 조선시대 문방(文房) 정서가 공존하는 과도적 성격의 그림으로 19세기말 서울에서 중인층 문화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짧은 기간 서울에서 유행한 기명절지화는 대구에서 1910년대에 나타나 190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현상에는 긍석 김진만(肯石 金鎭萬, 1876~1933)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김진만은 1920~30년대에 서울의 공필(工筆) 채색 화풍과 다른 문인화풍 기명절지화를 대구에서 이루었다.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는 근대기 기명절지화와 1900년대 대구 문인화의 전개에 큰 의미가 있다.
대구에 기명절지화를 처음 소개한 작가는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 1862~ 1936)로 여겨지지만 서병오가 기명절지화를 많이 남기지 않은데 비해 김진만은 기명절지화에 주력하여 자신의 화풍을 이루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김진만은 <팔공산 동화사적비>를 비롯한 서예와 사군자, 괴석, 화훼, 기명절지 등의 그림을 남긴 근대기 대구 서화계의 주요 작가이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로 일제하에서 8년 4개월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진만에 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진 바 없다.
본고는 김진만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김진만의 작가적 생애, 기명절지화 작품 현황, 관서(款署)와 화제, 도상과 화풍에 대해 살펴보았다. 김진만이 제작 날짜를 비롯해 작품에 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그의 둔세(遁世) 의식과 화은(畵隱)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시기를 출옥 이후 타계하기까지 10여 년 간으로 추정하였다. 현재 파악한 김진만의 기명절지화는 90여 점이다. 김진만은 농담과 강약이 있는 일회성의 서예적 필선을 운용하면서도 사의적 묘사성을 확보한 문인화풍 기명절지화를 이루었다. 김진만은 소재와 어울리는 역대의 명시를 화제로 하여 사군자화와 유사하게 화면을 구성하였고, 매난국죽과 소나무, 계수나무, 비파, 연꽃 등 군자적인 화목(花木)을 절지로 선호하였다. 김진만의 문인화풍 기명절지화는 당시 서울의 화풍과 차별되는 근대기 기명절지화의 또 다른 양상이라는 점과 미술의 지역성이라는 점에서 한국근대미술사와 근현대기 대구 문인화에 의미가 크다.
대구에서 기명절지화가 유행하고 김진만이 문인화풍 기명절지화를 이룬 것은 그가 사군자화를 위주로 했던 점과 아울러 자신을 포함하여 문인의 정서를 가진 문한(文翰) 계층이 많았던 대구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 1900년대 대구 화단에서 기명절지화가 지속되었던 현상에는 김진만이 사군자화와 기명절지화를 겸한 선례와 그가 남긴 작품들이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김진만 기명절지화의 의의와 특징을 밝혀 서울지역과 다른 문인화풍 기명절지화가 대구에서 전개되었음을 이해함으로서 한국근대미술사와 대구의 문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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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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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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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5 | 0.55 | 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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