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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長白山)和 中.韓(朝鮮) 國境線 問題 = 白頭山(長白山)和中.韓(朝鮮)國境線 問題 (The Borderline between Korea and China along with Paekdusan)
저자
양대언 (연변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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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3-132(40쪽)
KCI 피인용횟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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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은 우리 韓民族에게는 영원한 고향과 같은 민족의 發祥地 이며 국가의 始原으로, 생명력을 지닌 민족의 聖山으로 崇仰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조선 이후 夫餘, 高句麗, 渤海 등의 나라들이백두산을 근거로 하여 발전의 동력을 삼았고 민족 기상의 發揚의 근본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한편 이 백두산 주변 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던 肅愼 ,靺鞨, 女眞, 滿洲族 등도 그네들의 發祥地 내지 根據地라 여겨왔고, 심지어 신격화 전설화 등 그들의 나름대로 崇仰 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백두산은 풍수지리상 지세를 사람 몸에 비유하여 이해하기도 하는데, 백두산을 氣가 뭉쳐진 머리로 하여 韓半島가 형성되고 그 氣의 흐름이 낭림산맥-태백산맥-소백산맥- 노령산맥으로 이어져 백두산의 기가 전달되는 등뼈 의 역할을 하는 “白頭大幹” 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백두산은 기원926년에 契丹族에 의하여 발해가 멸망됨으로서 우리민족의 영역에서 벗어나 우리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 후로 부터는 故土回復의 전진 기지, 혹은 최전방 에 보이는 탈환의 고지 진지로 되어, 오랜 세월 우리민족의 마음속에만 간직된 잃어버린 터전에서, 되찾아야 될 옛 고향 땅이 되고 말았다. 한편 만주족의 淸도 이곳을 민족의 發祥地로 , 국가번영의 터전으로 하여 벼슬을 내리고 이름 마져 泰山,長白山이라 하면서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영원토록 번영의 길로 갈수 있다고 여겨 왔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백두산은 우리 민족뿐 만 아니라 북방에서 明滅하던 東夷 諸國의 정신적 고향 땅으로 활동의 주 무대가 되어, 이곳에 대한 국경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이후 이 지역을 자신들의 근거지라 하여 타 민족의 접근조차 금하는 封禁政策을 실시하여 200여 년 간 어느 누구도 출입을 하지 못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7세기후반 18세기 초 조선 사람들이 압록강, 두만강 을 넘어와 백두산 인근 지역과 두만강 북안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 하자 청은 그 당시 국경도 확정 되지 못했던 백두산을 그들의 영역으로 귀속 시키려 했다. 1712년 白頭山 定界碑를 세워 백두산에 관한 언급 없이 천지를 포함하는 넓은 산지를 자기들의 영토로 삼았고, 심지어 土門江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국경분쟁의 산물인 間島問題가 야기되었다. 그 이후 日帝의 强占으로 우리의 국권이 상실된 시기에 독립운동의 據點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국권이 회복된 후에도 우리민족의 분단과 조선(북한)과 중국이 1962년에 조,중 변계조약에 의하여 백두산이 반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두산의 역사와 명칭문제를 보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이 중국의 전국시대인 BC475년~AD 221년 사이에 쓰여진 지리지(山海經) 이다.
여기에 不咸山으로 등장한 이래 漢代 單單大嶺으로, 남북조 시대 北魏에서는 개마대산, 당의 시대는 太白山이라 불렸고 , 고구려 시대 白山 여진족의 금나라 시대인 1115년경부터 장백산이라 불렸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삼국유사>에 처음 그 기록이 나오는데 신라31대왕인 신문왕(681-692)시기에 白頭山이란 기록이 처음등장 했고 ,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조 4대왕 세종시기에 압록강 두만강을 회복 하면서 백두산을 다시 거론 했다. 근세에 와서는 중국의 청조 시기인 1712년 백두산 정계비와 관련된 문서와 중화민국, 만주국,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부터 1980년대 초까지 白頭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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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3 | 0.63 | 0.5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4 | 0.56 | 1.019 | 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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