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使行)의 기록과 <항장무(項莊舞)> 연구 - 1791∼1828년의 『연행록(燕行錄)』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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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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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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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281-316(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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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장무(項莊舞)>는 조선후기 중국과 국경지대에 위치한 평안북도 선천지방의 잡극(雜劇)으로 존재하다가 고종 대(高宗 代) 궁중에 유입 되었다. <항장무>는 <사자무>와 더불어 배역, 대사, 행동, 이야기가 있는 무극(舞劇) 정재다. <항장무>는 중국의 옛 고사 ‘홍문지연(鴻門之宴)’의 이야기를 무극화 하였다. <항장무>와 관련한 춤은 <공막무>, <건무>, <검무>, <첨수무>, <번쾌의 춤>이 있으며 <검무>는 평안도 관기(官妓) 들의 주요 레퍼토리이자 특기로써 <항장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검무>는 조선과 중국이라는 국경의 요충지에서 지리적, 문화적 영향 속 인기 레퍼토리이자 유방과 항우의 숨 막히는 대결구도를 상징 하는 동시에 사신(使臣)을 위한 연향의 흥을 돋우는 이중적 의미를 지 니고 있다. <항장무>는 사행의 노정(路程) 위에서 『연행록(燕行錄)』에 기행산문 (紀行散文), 기행가사(紀行歌辭), 기행한시(紀行漢詩)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 되었다. 사행(使行)은 연행(燕行)의 과정에서 한·중 지식인들의 소통, 외교, 경제와 문화예술을 포괄하는 문화행사였다. 사행의 『연행록』은 역사와 민속을 아우르는 복합적 텍스트로써 『연행록』에 <항장 무> 관람기가 다수 존재한다. 1791년 김정중의 『연행록(燕行錄)』「기유록(奇遊錄)」은 사행의 국내 노정 속에서 <항장무> 관람기가 등장하는데 일기형식과 검무시(劍舞詩) 를 혼용하여 기록 하였다. 기녀(妓女) 난심에게 지어준 검무시(劍舞詩)가 등장하고 사신을 접대하는 청류당에서 <항장무>를 관람하였다고 하며, 평안도 지역의 관기들이 <검무>를 잘 추었다는 것을 산문으로 남겼다. 1828년 작자미상의 『부연일기(赴燕日記)』「왕환일기(往還日記)」에는 <항장무>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항장무>의 모티브가 되는 ‘홍 문지연’ 공연을 산문형식으로 기록한다. 연희 장소인 숭문문(崇文門)은 북경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부연일기(赴燕日記)』 속 <항장무>는 사신 일행의 중국 노정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백 개의 누대와 복색, 기계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말하면서 무대와 관람석 간의 차별화 등 연희 공간을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항우와 패공, 장량과 번쾌 등장인물과 무구(舞具)의 정교함을 열거하면서도 ‘홍문지연’ 공연의 구체적 내용과 춤사위는 서술하지 않았다. 1828년 박사호의 『심전고(心田稿)』「연계기정(燕薊記程)」에는 사행일행이 선천에 머물며 <항장무>를 관람한 것을 기록하였다. “이제부터 앞 으로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패공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며 마치 수치스러운 일인 듯 말하니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웃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여 <항장무>의 ‘대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당시 관객의 반응까지 묘사했다. 그리고 의검정이라는 공간에 ‘엄연하 게 늘어앉았다.’라고 하여 배역의 위치를 그렸다. ‘그 중 건장한 기녀가 가면을 쓰고 검을 차고 검을 번쩍거리며 좌우를 흘겨보면서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며 그 뜻이 패공에게 있음을 표현한 것, 항백이 일어나 춤 추며 패공을 보호하여 막는다.’라며 춤사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는 <항장무>의 <검무>와 <공막무>를 정확하게 글로 표현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항장무>에서 가장 위기의 순간 클라이맥스를 박사호의 『심전고(心田稿)』에서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828년의 『심전고(心田稿)』를 통해 <항장무>가 고종 계유년(癸酉年) 1873년 궁중 에 유입되기 45년 전, 선천에서 대사가 있는 잡극 형태로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항장무>는 <검무>와 더불어 사행의 기록인 『연행록』을 통해 조선 시대 중국과의 외교, 문화예술 교류 속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는 무극 정재로써 의미가 있다.
더보기Hyangjangmu used to be a miscellaneous play that originated in Seoncheon, Pyeonganbuk Province along the border between Joseon and China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before being introduced into the court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Like Sajamu, it consists of dances and songs in the format of dance drama with roles, lines, actions, and stories. This dance drama is based on the story of an ancient event in China called “Hongmunjiyeon.” There are several dances related to Hyangjangmu including Gongmakmu, Geonmu, Geommu, Cheomsumu, and Dance of Beonkoae·Of them, Geommu was part of the main repertoire and specialties of Gisaengs that belonged to the office of Pyeongan Province and holds important significance in Hyangjangmu. Geommu was enjoyed as part of the popular repertoire under the geographical and cultural influence of a strategic point along the border between Joseon and China. It holds dual meanings, representing the breathless confrontation between Liu Bang and Xiang Yu and adding to the amusement at a court banquet for envoys. Hyangjangmu was recorded in various forms including travel prose, Gasa, and Chinese poetry in Yeonhaengrok along the route of an envoy trip. In the course of trip to Beijing, an envoy trip was a cultural event to encompass communication, diplomacy, economy, and culture & art between Korean and Chinese intellectuals. Yeonhaengrok of an envoy trip was a complex text covering history and folklore, offering many impressions after a Hyangjangmu performance. Giyurok of Kim Jeong-jung’s Yeonhaengrok of 1791 contains an impression after a Hyangjangmu performance in the domestic route of an envoy trip. The record is a mixture of the journal and Geommu poetry forms. The prose part records that he created a Geommu poem to Nansim, a Gisaeng lady, watched Hyangjangmu at Cheongryudang where envoys were entertained, and found that Gisaengs registered at the office of Pyeongan Province were good at Geommu. Wanghwanilgi of Buyeonilgi of 1828 whose author is unknown has no direct mention about Hyangjangmu but records the “Hongmunjiyeon” show, which is the motif of Hyangjangmu, in the prose form. Sungmunmun, where the banquet was held, was in the center of Beijing, and Hyangjangmu in Buyeonilgi was recorded as part of the envoy mission's route in China. It offers detailed descriptions of the venue including hundreds of lookouts, costumes, magnificent and splendid machines, and differentiation between the stage and the stand. It enumerated the characters including Xiang Yu, Liu Bang, Zhang Liang, and Fan Kuai and the exquisite arms, but it provided no depictions about the concrete content and dance movements of the “Hongmunjiyeon” performance. Yeongyegijeong of Park Sa-ho's Simjeongo of 1828 offers records about the envoy mission’s watching of Hyangjangmu at Seoncheon. These records even depicted reactions from the audience, directly mentioning “lines” from Hyangjangmu: all the people present burst into laughter as the character said, “I will rather die before wishing to be a Paegong,” as if he could not bear the shame. In addition, the records depicted the positions of the characters, saying that they were “seated clearly” in the space of Uigeomjeong. The descriptions of dance movements were detailed: “A bulky Gisaeng lady moved back and forth, wearing a mask, wielding a sword, and looking at sideways. She was expressing that her intention was in Liu Bang. Xiang Bo stands up and dances, protecting him.” This part gives an accurate description of Geommu and Gomakmu of Hyangjangmu. Park Sa-ho described the climax of the biggest crisis in Hyangjangmu in the most realistic way in Simjeongo. The records of Simjeongo of 1828 confirm that Hyangjangmu existed as a miscellaneous play with lines in Seoncheon 45 years before it was introduced to the royal court in 1873 of Gyeyu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Along with Geommu, Hyangjangmu holds significance as a dance drama of songs and dances that can be understood in diplomatic, cultural and artistic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China through Yeonhaengrok, the records of envoy tr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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