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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 전통시기의 감악산(紺岳山) 숭배와 산신(山神) 설인귀(薛仁貴) = Sol In-gui, the Mountain God of Mt. Kamaksan in Tradition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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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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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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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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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46(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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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은 조선시기 적성현의 진산이었다. 전통시기 한반도의 서북지역과 중부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공제하는 요충이었다. 이 일대는 삼국말엽에서 나당전쟁기에 치열한 쟁탈의 대상이었으며, 통일신라가 임진강 넘어 고구려 고토로 진출하는 길목이었다. 그리하여 감악산 일원의 그와 같은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한 신라 중앙에서, 통일전쟁이 끝나고 체제 정비에 나서면서 감악산을 小祀에 등재하였다. 신라의 중앙귀족은 감악산을 주재하는 산신으로 唐將薛仁貴를 추앙하였다. 한강 이북과 임진강 유역 일원의 주민들 사이에 잠재하던 고구려 유민의식의 분출을 저지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의 장수 설인귀를 내세워 공포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고구려를 향한 회고의 감정을 자제토록 억압하며, 또한 고구려의 멸망이 강대국 당에 의한 것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불가항력의 어찌할 수 없는 사태였던 것으로 체념토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발해의 등장으로 동요하던 고구려 고토의 주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제 영역으로 굳히며 그 주민을 신라인으로 흡수하고자 하였다. 감악산은 고려시기에 국가적인 제향의 대상이었다. 신라말 고려초에 적성지역의 호족들은 설인귀를 그 고장 출신으로 선전하며, 자신들 역시 감악산신 설인귀를 계승한 지역사회의 수호자임을 과시하려 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전공을 앞세워 감악산신 설인귀의 존재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지역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각인시키기에 이르렀다.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던 고려에서, 고구려 멸망 및 그 유민의 탄압에 앞장서던 당의 장수 설인귀가 감악산신으로 인정받기에 이른 경위는 그러하였다. 이후 고려왕조 내내 감악산신 설인귀는 지역사회와 국가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었다. 또한 왕실을 비롯하여 公卿士庶에 이르기까지 消災招福을 빌며 감악산신 설인귀에게 제향을 올리는 게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감악산 신당에 모셔진 설인귀 부부를 포함한 그 가족 6인의 神像은, 이를테면 그처럼 확고히 뿌리내린 고려시기 감악산 숭배의 상징물이라 하여 지나치지 않은 셈이었다. 조선 유교사회의 전개와 함께 감악산 숭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유교식 제향을 위한 사우인 紺岳祠가 세워지고, 그곳에 위패를 봉안하여 매년 3차례씩 정기적으로 유교식 예제에 따른 제의가 행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설인귀를 神體로 하는 민간의 감악산신당이 유지되는 가운데 소재초복을 비는 제향도 끊이지를 않는 게 현실이었다. 유교식 제향을 위한 감악사와 전래의 설인귀사당이 공존함으로써, 공적인 유교식 예제와 민간에서의 전통적인 산악숭배 관습이 적절히 타협한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조선후기로 내려갈수록 유교식 예제가 정착되어가는 반면에 전래의 감악산 숭배가 약화되어가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추세였다. 자연히 감악산신 설인귀의 존재도 점점 희미해져갔으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더보기In ancient times, Mt. Kamaksan was a strategic point between the northwestern and central parts of the Korean Peninsula. This was the very reason that the Silla Kingdom considered Mt. Kamaksan so important and registered it as an official mountain on which official rituals were conducted. It was considered to be godly. Aristocrats who lived in the capital of Silla deified Sol In-gui(Xue Ren-Gui in Chinese), a general of Tang China, and revered him as a Mountain God of Mt. Kamaksan. The intension was to prevent people residing in the area between the Hangang River to Imjingang River from asserting their sense of identity as people of the fallen Koguryo Kingdom. The aristocracy of Silla intended to inspire fear among the people of this area by raising the specter of General Sol In-gui, who brought the Koguryo Kingdom to an end. By doing so, Silla tried to induce people of Koguryo to suppress their nostalgia for Koguryo and resign themselves to the their fate as subjects of Silla. The royal court of the Koryo Kingdom continued to perform rituals to Mt. Kamaksan. Powerful local gentry of the Kamaksan area, for example Choksong county, claimed that Sol In-gui was from the area. They represented themselves as guardians of the community in the spirit of Sol In-gui, the Mountain God of Mt. Kamaksan. Citing their military distinction in vanquishing foreign enemies, the local gentry demanded that the Koryo Royal Court recognize Sol In-gui, the Mountain God of Mt. Kamaksan. This would greatly bolster their authority in the area. Throughout the Koryo period, the Mountain God of Mt. Kamaksan, Sol In-gui, was worshipped as a guardian god of the local community and the nation. It also became custom to pray to the Mountain God of Mt. Kamaksan to ward off disasters and bring good fortune. Choson was a Confucian state. A shrine called Gamaksa was built on the top of Mt. Kamaksan to perform official Confucian rituals three times a year, but the local residents continued to maintain the shrine dedicated to Sol In-gui. With both Kamaksa Shrine and Sol In-gui Shrine in the area, the official Confucian rituals and the time-honored practices of the local people of worshipping the mountain became reconciled to some degree. However, later in the Choson period, Confucian rituals took root more strongly, and the traditional worship of Mt. Kamaksan naturally began to fade away. Belief in Sol In-gui, the Mountain God, declined little by little until it ultimately disappeared from the memory of people enti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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