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兢人 許憲의 성장과정과 한말 변론활동 연구 = The life and activities of Anti-Japan Lawyer, Heo Heon in the Late Choseon Dynasty and the Korean Empire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3-220(48쪽)
KCI 피인용횟수
1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兢人 許憲(1885~1951)은 한국근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 가운데 그 명망성에 비해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인물이다. 현재까지 허헌에 관한 석․박사 학위논문은 단 한 편도 없으며, 제대로 된 학술논문도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8.15 직후의 해방공간에서 굳이 구분하자면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허헌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법조인, 독립운동가, 정치인 등 여러 방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른바 ‘3인’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에 대한 지원과 변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재판에서는 유명한 ‘공소불수리 신립 사건’으로 일제 사법당국에 일격을 가했으며, 1920년대 말에는 新幹會 위원장을 지내면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다가 옥고를 치렀고, 8.15 직전에도 이른바 ‘단파방송 사건’에 연루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그의 활동에 근거하여 오늘날 허헌이라는 인물을 ‘양심적 내지 진보적 민족주의자’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 글에서는 기존에 허헌에 관한 글들에서 출생과 집안 환경, 성장과정, 上京과 각 학교의 수학과정, 관직 입문, 변호사 시험 합격과 활동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확인하고 이러한 여러 오류들을 바로잡는 데 주력하였다. 당대 사료 등에 기초해 정리해보면, 일제강점 이전에 허헌은 ‘1895년 재동소학교 입학, 1897년 재동소학교 고등과 입학, 1900년 관립중학교(1906년 한성고등학교로 개칭) 입학, 1903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德語學校) 입학, 영어야학 수학, 1905년 보성전문학교 입학(주간) 입학, 1906년 규장각 주사로서 서기로 근무, 大韓自强會 참여, 1907년 普專 졸업과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 및 개업, 大韓協會 참여, 1908년 하미전 사건으로 최초의 변호사 제명 징계(1.25), 西北學會 활동, 일본 明治大學 유학(청강생), 大韓學會․硏學會․大韓興學會 등 단체 활동, 1909년 귀국, 서북학회 총무 활동, 西北協成學校 강사, 변호사 제명 징계 免除(5.17)와 개업, 1910년 낙향’의 순으로 활동하였다.
‘하미전 사건과 변호사직 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허헌은 민중의 권리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 통하게 되었다. 그가 변호사로서 초기에 겪었던 일련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국가가 국민을 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리적 고민을 한층 더 심화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누구보다 꼼꼼한 법 해석력은 이후 1919년 3.1운동 재판에서 사법당국에게 일격을 가한 ‘공소부수리 신립’의 성공이라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Heo Heon(1885~1951) is one of the most remarkable figures in Korean modern history. However, until now, there have been no master's theses and doctoral theses on this subject, and very few academic papers have been published properly. The reason for this is probably related to the fact that He participated in the ‘leftist’ national movement in ‘liberation space’ and then ‘North Korea’. Heo Heon is known to have been a leading figure in various fields such as lawyers, independence activists and politician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liberation spa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he actively worked for the independence activists and social activists as a member of the so-called ‘three-man lawyers’. In the arrested persons trial for 3.1 independent movement, he brought a blow to the Japanese law enforcement authorities with the famous ‘case of filing a petition for fire’. At the end of the 1920s he was imprisoned against the repression of the Japanese imperialism as the chairman of Shingan-hoi and was imprisoned again for the so-called ‘shortwave broadcasting incident' just before the liberation of 8.15.
I have confirmed that the existing research on Heo Heon is quite wrong from his birth, family environment, growth process, immigration to Seoul, study at each school, admission to public office and passing the lawyer examination and activities. So, in this article, I focused on correcting these various errors. As can be seen through the discipline of his lawyer's dismissal from this case of Hamijŏn(下米廛), Heo Heon became a human rights lawyer representing the rights of the people. Her experiences at the beginning of the ‘Anti-Japanese lawyer’ led him to intensify the more detailed legal interpretation and worry about how the nation should protect the nation within the framework of the law.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11 | 1.11 | 1.0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03 | 1.05 | 2.153 | 0.4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