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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및 장안사 소속 일행의 공연 활동 연구 = A Study of Changansa Theater and Its Perform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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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한국음악사학보(Journal of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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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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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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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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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90(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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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10년 전후에 전통공연을 펼친 여러 극장 중에서 기본적인 정보가 불분명한 장안사(長安社)를 주제로 공연장의 설립과 폐관시점, 극장주와 운영방식을 재고하였다. 아울러 전통공연레퍼토리와 출연진을 살피고, 전통공연활동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장안사(長安社)는 1900년대 초기에 협률사(協律社) 개관 직후 중부 장사동(長沙洞)에 문을 연 ‘삿갓집 모양’의 연희장(演戱場)에 연원들 두며, 공연활동 시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1908년 7월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 장안사에서의 전통공연은 1914년 10월경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극장은 존속했으므로 공연 종료시점과 폐관 시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장안사의 극장주는 이길선(李吉善) 한사람으로 거론된 것과 달리 7년여 동안 극장주가 수차례 바뀌었고, 극장은 주로 대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음을 밝혔다. 장안사의 존속기간이 길지는 않았으나 활동의 양상을 네시기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설립시점부터 1909년까지 전통공연 및 연극, 영화, 중국연희 등 대관공연 중심으로 운영되던 초창기, 이동백(李東伯) 등의 판소리 명창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대중의 지지를 얻기는 했으나 사회적으로는 음탕한 공연물의 온상으로 표적이 되었던 1910년부터 1912년까지의 전통공연 모색기, 배응현(裵應鉉)·심정순(沈正淳)·김재종(金在鍾) 일행(一行)이 주도한 상설공연과 지방공연으로 전통공연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1913년과 1914년초까지의 융성기,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기까지 1914년 6월전후의 극장운영 쇠퇴기로 정리할 수 있다. 한편, 전통공연 최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의 장안사 공연활동을 일행별로 살펴보면 배응현(裵應鉉)은 전통가무 종목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심정순(沈正淳)은 실연자로서는 전통 종목에 강했지만, 일행을 이끄는 기획자로서는 신소설 등을 소재로 하여 개량한 구연극(舊演劇) 형태의 공연에 주력하였다. 김재종(金在鍾) 일행은 배응현, 심정순이 구축한 장안사 레퍼토리를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기존 프로그램의 개량은 물론 타 극장에서 인기 있는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다. 장안사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통공연을 이끈 ‘일행’(一行)들이 전통적인 양식을 극장공연형태로 전환하고, 새로운 공연종목을 개발하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서울 공연에 한정하지 않고 지방순업대를 운영하여 극장의 영향력을 확산하였고, 지방과 서울에서 청중들의 지지를 얻은 ‘구연극’ 종목이 타 극장에서 공연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더보기The Changansa 長安社 was the one of the theaters in Seoul used during the early 1900s for the performanc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dance and drama. This paper presents an overview of the kinds of performance that were held, and when and how many times these performances were staged by groups of entertainers called irhaeng 一行-actors/actresses under contract to the theater. The Changansa theater began as a place of entertainment from 1907, not 1908 as previously thought. It was the principal venue for all kinds of entertainment such as film, drama and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Between 1907 and 1909 the repertoire of the theater consisted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drama, movies, and Chinese theatrical entertainment; between 1910 and 1912, p``ansori 판소리 (single actor operatic drama) performances, including some by the singer Yi Tong-baek 李東伯 were produced which unfortunately led to the theater being criticized for becoming a source of loose morals. In 1913-1914 the Changansa reached its pinnacle in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with the trio Pae ong-hyon 裵應鉉, Sim Chong-sun 沈正淳 and Kim Chae-jong 金在鍾 leading regular performances in Seoul as well as on provincial tours. From June 1914 the theater began to experience financial difficulties which led to its closure. During the theater’s heyday, Pae 裵, Sim 沈 and Kim 金 formed their own entertainment groups, Pae in traditional dance, Sim dramatizing the modern novel, and Kim staging adapted dramas by Pae, Sim or artists from other theaters. Kim also adapted dance performances by the Kang Son-ru group 降仙樓一行 of the Tansongsa 團成社 theater, by adding new elements to them. This has led many researchers to regard the main repertoire of the Changansa as dance, but actually the main activity of the theater was old-style play (kuyon``gok 舊演劇) like operatic drama, ch``anggok 唱劇. As the first modern theater in Korea, the Changansa brought Korean traditional performance that had been staged outdoors to an indoor stage, and it allowed groups of performers to create a new genre, old-style play, which influenced the repertoire of other theatrical groups in the 19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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