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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설립초기 일제의 탄압과 대응 양상 = The Suppression of Japanese Empire and the Reactions of Daejonggyo in Its Early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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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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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8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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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종교 초기(1909∼1911)에 일어난 ‘교명개칭’과 ‘공주시 교당 사건’을 통해 일제의 탄압에 대응한 대종교 교단의 변화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이 두 사건으로 나철의 대종교는 국수적 단군숭봉사상을 가진 백봉집단과 달리 보편적 천신관의 신앙단체로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백봉이 선포한 「檀君敎佈明書」의 정신위에 국권회복을 목표로 설립했던 대종교는 단군숭봉이라는 강력한 國粹的 성향으로 인해 초기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경술국치를 당하여 대종교는 교단과 교인들을 보호하고자 점진적 계몽운동을 택했다. 1909년 9월 경술국치 직후에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교명을 개칭하고 대황조단군 숭봉론에서 한인·한웅·단군을 天神으로 개념화한 三神壹體 신관을 채택했다. 고조선 건국일을 기념하던 開極節도 천신탄생일을 상징하는 開天節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교명개칭’은 시조 단군을 숭배하는 국수적 신앙론에서 천신 숭배라는 보편적 신앙체제로 변화함으로써 교단존속을 도모했던 첫 사건이다. 1911년 1월에 일어난 ‘공주시교당 사건’은 일제 탄압에 대응하여 「五宗旨」를 변경함으로서 교단의 존속을 꾀했던 두 번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친일파 박정양에 의한 감시와 탄압이지만 크게는 일제탄압의 사례로 규정된다. 박정양은 공주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대종교인을 감시하고 「檀君敎佈明書」와 『五大宗旨佈明書』를 압수하여 총독부 앞으로 대종교가 배일불온 독립운동단체라고 밀고하였다. 「오종지」는 대종교의 설립이념에 대한 실천적 교리로써 ‘고토회복’과 ‘민족단결’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 사건으로 대종교는 다섯 개의 종지 가운데 네 가지 종지를 변경했다. 강력한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세계평화의 실현과 심신 수행을 골자로 한 것이다. 이 두 사건을 겪은 이후 대종교와 백봉집단이 교류한 정황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이 무렵에 대종교 조직도 나철중심의 지도체제로 완전히 확립되었다. 나철은 교단 존립을 위해 단군숭봉을 내면화시키고 외형적으로는 신관과 교리를 바꾸며 일대 변혁을 시도했지만 일제총독부는 1915년 8월, 「포교규칙」을 통해 ‘종교유사단체’로 규정하며 종교 활동을 금지했다. 1916년 8월 15일, 나철은 구월산 삼성 사에서 순교함으로써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였다.
더보기This is about the suppressions on Daejonggyo by Japanese imperialists and the reactions of Daejonggyo. The suppressions and reactions were developed with both of the ‘renaming’ of Dangungyo(Daejonggyo) in 1910 and ‘the case of Gongju chapel’. This reviews the separation of Baekbong group and Patriot-Enlightenment Movement group and the subsistence of a religious order by enlightenment movement ; Baekbong`s Shingyo group had an ultranationalistic Dangun ideology. Dangungyo was founded by Nacheol on the basis of 『The Manifestation of Dangun`s lecture』proclaimed by Baekbong. It had been suppressed by Japanese imperialists since its foundation. 1910`s National Humilation made Daejonggyo, its nationalistic tendency to avoid suppression of Japan and choose a gradually progressive way of enlightenment movement instead of Baekbong`s Shingyo group. Daejonggyo renamed Dangungyo as Daejonggyo and chose Trinitarian as its faith theory ; they respected Trinitarian God of Hwanin, Hwanwoong, and Dangun. Gaegeukjeol(The National Foundation Day of Gojoseon Dynasty) was renamed as Gaecheonjeol to celebrate the birth of Heavenly God and the national foundation. The renaming was the first case which changed its nationalistic faith theory with a universal faith order respecting Heavenly God. In January of 1911, Daejonggyo faced with the second crisis of its existence with ‘the case of Gongju chapel’. This case should be classified as one of the Japanese suppressions. It was a supervision by a pro-Japanese under the Japanese colonial order. The pro-Japanese Park analyzed records about Dangun in the 『Manifestation of Dangun`s lecture and Manifestation of Five Principles』 and made an anonymous report for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on that Daejonggyo is not a religion, but an anti-Japanese disturbing national movement group. The essential parts of 「Manifestation of Five Principles」 as a practical doctrine are ‘Regaining the native land’ and ‘National solidarity’. The reaction of Daejonggyo was that changed its faith doctrine to show that it is a Sundo discipline realizing world peace and excluding an aggressive nationalistic ideology. These two cases resulted in a termination of Baekbong`s Shingyo group and Nacheol`s Daejonggyo and an establishment of Nacheol`s leadership system. Nacheol, for the existence of the religious order, changed the concept of God and doctrine. And he took a concept of ‘Shindo (Shintaoism)’ deifying Dangun as ‘Heavenly God’. However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proclaimed a ‘missionary regulation’ in Aug, 1915, and ordained Daejonggyo as a pseudo-religious group not a religion. Nacheol died a martyr to oppose Japan at Samseong temple on the 15, 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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