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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어향론(御鄕論)’과 고려 혜종에 대한 재평가 = Re-evaluation of ‘Naju Eohyang Theory’ and King Hyejong of Goryeo
저자
김병인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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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9-8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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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가 어향이라는 인식의 출발점은 혜종의 모후인 장화왕후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현종대 피란과 목 설치, 팔관회 개최, 흥룡사와 혜종사 건립 이후 나주가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점을 추가로 설명함으로써 ‘나주 어향론’을 강화시켜 왔다. 이는 혜종에 대한 기존의 낮은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즉, 어향의 근거가 되는 혜종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에 현종대 이후 변화상을 덧붙여 어향 나주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어향 나주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혜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혜종의 국왕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입증된다면, 그 자체로 ‘나주 어향론’은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혜종은 어렸을 적부터 군주의 풍모가 있었고, 7세 때에 세자[정윤]가 된 이후부터 예비국왕으로 자질을 함양하였으며, 건장한 신체를 갖고 있었던 바, 후삼국전쟁의 과정에서 박술희와 함께 상당한 군공을 쌓은 까닭에 태조 왕건의 신임을 얻었다. 특히 태자 시절에 국가기무를 결재하였으며, 신하와 사신 접대에도 능숙하였다. 즉위한 다음에도 덕정을 쌓았으나, 왕규의 난을 겪은 다음에 의심이 많아져서 실정을 하다가 병에 걸려 재위 2년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장화왕후가 왕건을 만나기 직전 용꿈을 꾼 것은 신성가문 출신 왕건과 재지세력 오씨가문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오씨가문의 딸이 신성가문의 자식을 잉태하기 위한 사전 준비단계였다. 태자 무는 ‘진용자’로서 ‘계통지덕’을 갖췄지만 다른 형제들과의 후계 구도가 복잡하였으므로, 태조의 명을 받은 박술희의 도움을 통해 후계자의 지위를 지켜냈다. 태조는 맏아들인 혜종이 왕위에 오를 만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판단하고 그를 왕위계승권자로 결정하였다. 이후 왕위계승권자로서 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자질을 더 키워나가게 했으며, 그를 지지할 후원세력을 만들어 줌으로써 안정적으로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최승로는 정종에서 광종으로 이어진 왕위계승을 정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왕규의 난에 대한 혜종의 초기 조치에 대해서 큰 도량 운운하다가, 시위군 보강과 장사 포상에 대해서는 체통을 잃었다고 비난하였다. 고려 후기 이제현은 당시 혜종이 왕규를 내치지 않은 것을 ‘소인을 멀리하지 못함’에 비교하여 경계했어야 할 일로 규정하였다. 때문에 혜종이 왕규의 난 이후 실정을 했다는 혜종 총서의 기록이나 최승로의 평가는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혜종에 대한 평가는 태몽에서부터 성장 과정, 태자 시절과 즉위 과정에 대한 평가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된 ‘진용자’와 ‘계통지덕’을 갖춘 군주로서의 자질과 위상을 온전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혜종은 숙종대 한 차례를 제외하고 고려시대 내내 태묘에 봉안되었다. 이는 태조-혜종으로 이어지는 고려 왕실의 정통 계보가 후대까지 의심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방증이다. 즉, 혜종의 군주로서의 위상에 대한 평가는 당대에서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나주 어향론’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혜종에 대한 온당치 못한 평가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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