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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논문 1 : 고대 동아시아사상의 백제와 중국 ; 한국에서 새롭게 출토된 두 건의 백제 사료 연구 -<사리봉안기>와 "行貞觀十九年(행정관십구년)" 가죽 漆甲의 명문을 중심으로- = Two Topics of the South Korea newly unearthed Paekche historical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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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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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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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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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17(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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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행한 익산시 미륵사지 西塔수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사리함을 발견했는데, 그 사리함에서 693년 제작된 <사리봉안기>를 포함하여 백제 말기의 많은 유물이 나왔다. 2년 후인 2011년 9월, 공주대 박물관 고고발굴단이 공주시 공산성 유적에 대한 4차 발굴 조사 보고회를 열고, "行貞觀十九年卄一日" 명문을 가진 가죽 칠갑의 출토 사실을 알리고, 나아가 이 칠갑의 다른 한자 명문과 당나라 칼 등에 대한 내용을 공포하였다. 또한, 2014년 9월에는 제7차 출토 발굴의 성과로서 새로운 가죽 칠갑의 명문을 소개했다.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와 공산성 유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된 한자 명문 등은 모두 한국의 고고학계 및 역사학계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한국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함과 동시에 중국과 한국의 현존하는 문자자료를 결합하여, 미륵사 서탑의 <사리봉안기>는 한국의 역사서인 삼국유사 에 기록된 ``鄕傳`` 사료, 즉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뒤집은 것이며, 이 시기 신라와 백제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금석사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한 "行貞觀十九年" 등의 명문이 있는 가죽 칠갑은 관련 문헌사료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한중학계의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이런 견해들은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필자는 이 유물이 발견된 저수지의 위치, 그리고 붉은색으로 쓴 커다란 명문으로 미루어 칠갑 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몇 년 후 그 위쪽에 저수지를 조성했기 때문에 이 유물들이 저수지 바닥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유물들은 백제 멸망 10여 년 전, 당과 백제의 우호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백제 멸망 이후 당은 이 지역에 웅진도독부의 치소를 두고 통치하였는데, 상술한 저수지가 여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공산성 내의 면적이 협소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 사료로서 상술한 두 건의 자료는, 비록 일부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후의 심층 연구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7세기 중엽 당과 한반도 정권의 관계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임에는 틀림없다. 이후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를 통해 새로운 사료가 부단히 출현하고, 이에 대한 엄밀하고 정확한 고고 발굴보고서가 빠른 시일 안에 출판된다면,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 역시 이른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더보기In January 2009, in the process of clearing up the overturned Maitreya Temple West Tower in Yishan City, archaeologists in Chungcheong Province of South Korea discovered Sarira Feng An Ji( 舍利奉安記 ) which was made in 639A.D. and other relics belonging to the late Paekche in the Sarira Box. After two years, in September 2011, the archaeological team coming from the South Korea`s National Public State University Museum reported the fourth case of exploring the Gongshan City(公山城) Site in Gongzhou(公州), including the discovery of "The 21 April of Zhenguan 19 Year"("行貞觀十九年四月卄一日"皮漆甲銘文) and other Chinese inscriptions, Tang swords, etc. In September 2014, archaeologists reported the seventh exploring where discovered the newly unearthed Chinese inscriptions. The Chinese inscriptions which were found in Maitreya Temple West Tower and the Gongshan City Site have been causing great repercussions in the field of Korea`s archaeology and history. Combining the Korean scholars`` research and existing textual historical documents from China and Korea, I think that the discovery of Sarira Feng An Ji( 舍利奉安記 ) which was found in the Maitreya Temple West Tower has changed the record of the love myth between the King Mu of Paekche and the Pricess Shanhua of Silla written in the Korean historical book Samguk Yusa( 三國遺事 ), and provided important epigraphy material. Because there are rare textual historical documents related to "The 21 April of Zhenguan 19 Year" inscription and others found in Gongshan City Site, scholars of China and Korea have different explanations, but there are still some problems that we can study further. According to the place of impounding reservoir and the red giant inscription, I think these relics are probably made by Paekche government for burying in the cenotaphs of Tang soldiers sent for the expedition to Goguryeo. Several years later, the government digged impounding reservoir above them, so these relics remained in the bottom of the reservoir, standing for the good relationship between Tang Empire and Paekche before the downfall of Paekche. Of course, after Paekche perished, Tang supported the power of the Area Command of Xiongjin(熊津都督府), and this place was as the seat of Xiongjin for a time. The choice of the reservoir`s geographic position may be because the Gongshan City area was small. Although explanations for some questions still need more investigation, there is no doubt that the two newly unearthed Korean archaeological materials have been providing important evidences for studying further on these problems which are related to the policies of Tang Empire and the Korean Peninsula in mid-7th. I think maybe we can solve these problems in the near future by academia`s lasting research, the continuous discoveries of new historical documents, accurate and rigorous archaeological reports`` publishing as soon as possible,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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