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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성종대 관요의 설치와 정비 = Establishment and Maintenance of Gwanyo during the King Sejo–King Seongjong Period
저자
발행기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S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학술지명
石堂論叢(JOURNAL OF SOKDANG ACADEMIC RESEARCH OF TRADITIONAL CULTURE)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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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77-30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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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seeks to elucidate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nd maintaining gwanyo between King Sejo and King Seongjong based on its political history. Accordingly, it presents a framework for organically understanding Joseon, its kings, and white porcelain.
The historical task of Joseon in the 15th century was to lay the foundation for governing the nation centered on the king. White porcelain evolved since King Sejong's reign in conjunction with the royal authority. King Sejo even emphasized the need for a rationale in using tableware. When his despotic rule began to be challenged in the 1460s, King Sejo emphasized the virtue of “the place of the king and his subject” even in the daily use of tableware. Furthermore, he established gwanyo around 1467 to control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white porcelain. It is presumed that King Sejo established gwanyo as a means to re-establish his despotic rule in the 1460s.
King Seongjong ascended the throne in November 1469 at a young age. His authority as a king was relatively weak until he began ruling directly in January 1476. Thereafter, King Seongjong launched efforts to strengthen his authority by abolishing wonsangje. In line with this, the gwanyo system also began to stabilize. White porcelain engraved with the Chinese character-numbers such as cheon, ji, hyeon, and hwang excavated from the 14th kiln site of Usan-ri, which was operated in the 1480s, supports this hypothesis. The issue of the kiln structure for increasing the success rate of white porcelain production in the 1490s and the apportioning of the firewood site at Saongwon can be interpreted within the same context.
Essentially, the keyword common to strengthening the status of white porcelain as the royal pottery in early Joseon, regulating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white porcelain, and establishing and maintaining gwanyo appeared to be “strengthening the king's authority.”
이 글은 세조~성종대 관요(官窯)가 설치·정비되는 과정을 당시의 정치사적 측면에서 해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 왕, 그리고 백자를 유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틀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15세기 조선의 시대적 과제는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통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백자는 세종대부터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전개되었다. 세조는 기명(器皿)을 사용하는 데에도 명분(名分)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1460년대 세조는 그의 전제 왕권에 균열이 발생하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에도 ‘군군신신(君君臣臣)’이라는 덕목을 투영하였다. 이후 1467년경 백자의 생산과 소비를 통제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목(廣州牧)에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을 두었다. 관요는 세조가 1460년대 그의 전제 왕권을 재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은 1469년 11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의 왕권은 1476년 1월 친정(親政)을 시작할 때까지 미약하였다. 그러나 성종은 친정 이후 원상제(院相制)를 폐지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관요 체제 또한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1480년대에 운영된 우산리 14호 요지에서 출토된 ‘천(天)·지(地)·현(玄)·황(黃)’ 등 천자문 자호(字號)가 새겨진 백자는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1490년대 백자의 번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가마 구조에 대한 고민과 사옹원의 시지(柴地) 분급도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 초 어기로서 백자 위상 강화 → 백자 생산·소비 통제 → 관요 설치·정비를 관통하는 키워드(key word)는 바로 ‘왕권의 강화’로 판단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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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Jou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3-2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 석당학술원영문명 : Se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 Seokdang Academy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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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2 | 0.62 | 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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