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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1643년 계미사행을 전후한 화원 이기룡의 행적 및 활동 = Behavior and Activities of Painter Lee Gi-ryong before and after Gyemisah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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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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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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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0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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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 이기룡(李起龍, 1600~?)은 계미사행(癸未使行, 1643)의 수행화원(隨行畵員)이다. 계미사행은 조선화 또는 수행화원의 그림에 대한 일본 측의 요구가 폭증하면서 수행화원의 역할과 입지에도 변화가 나타난 사행이었다. 사실 계미사행부터는 통신사의 성격이 정치·군사적 면보다는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측면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수행화원의 활동 역시 본격화되었다. 조·일간 문화교류사의 측면에서 조선통신사를 연구한다고 할 때, 수행화원의 역할과 활약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룡의 사행 기록은 물론이고 국내활동에 대한 기록도 소략하여 그의 연구는 입체적으로 이뤄지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는 이기룡의 계미사행 활동을 중심으로 전후 활동을 고찰해 보았다. 병자사행에 이어 이기룡이 파견된 계미사행 당시 일본 화단은 선화가 일대 유행이었다. 선화로 인해 병자사행에 이어 방일한 김명국과는 달리 그의 선화는 알려진 작품이 없다. 선화를 그려 남긴 김명국과는 달리 선화 한 점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파견된 두 명의 화원의 역할과 활동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점이다. 수행화원으로서 일본측 구청에 응하는 그림을 그려 남긴 김명국은 그의 활동 이력이 고스란히 기록물을 통해 전하는 반면 이기룡의 활동은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는 정묘호란(인조 5)과 병자호란(인조 14)을 겪은 조선이 대외활동에서 상대국의 군사정보를 그림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바를 이기룡이 비밀리에 수행했던 바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추측은 이기룡이, 이홍규를 이은 화원가문인 점과 사행 이전 1638년 『인조장렬후가례반차도』를 제작하는 데 인조가 아꼈던 이징(李澄, 1581∼?)과 함께 참여한 점 등에서 미뤄볼 수 있다. 그의 현존하는 일본사행 작품은 말 그림으로 당시 긴박했던 사행과는 동떨어지면서도, 국내의궤 활동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진 것을 미뤄보아서 사행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즉 해당 작품은 일본 측의 요청으로 사전 제작해서, 일본으로 가지고 간 것으로 무게를 두었다. 단독으로 참여한 1631년 『선조목릉천장산릉도감의궤』의 사신도와 비교하면 정교한 필치와 안정적인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기룡은 다른 회차에 파견된 수행화원들과 마찬가지로 사행 이후에 활발한 국내활동을 이어간 화원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역시 부친과 가문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그런데 이기룡의 아들 이형정의 공적ㆍ사적 활동 기록이 전무한 점과 1661년 의궤 참여를 마지막으로 공적 활동이 없는 점 등은 이후 가문의 세력이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개인의 화가로서보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원이라는 공적 입장에 있었고, 그의 활약도 그런 범주 내에서 평가되어 왔다. 개인 작품이 현존하지 않는 수행화원 이기룡의 행적 범주를 좀 더 확산시켜 그의 가문적 배경과 도화서 내에서의 활약까지 두루 조망해 봄으로써 수행화원 이전과 이후의 내·외연적 활동을 고찰하였다.
더보기Painter Lee Gi-ryong (李起龍, 1600~ ) is an entourage painter of Gyemisahaeng (癸未使行, 1643). Gyemisahaeng was a journey in which there was a change in the role and position of the entourage painters as Japan`s demand for Joseon paintings or paintings of entourage painters increased. In fact, since Gyemisahaeng, the nature of the envoys was strengthened as a cultural delegation rather than a political and military aspect. When studying Joseon Envoys in terms of cultural exchanges between Joseon and Japan, it is very important to examine the role and performance of the entourage painters. Nonetheless, Lee Gi-ryong`s journey records as well as the record of his domestic activities were negligent and studies on him were not fully conducted. In this paper, this study reviewed pre- and post-activities of Gyemisahaeng focusing on Lee Gi-ryong`s Gyemisahaeng activities. When Lee Gi-ryong was dispatched to Gyemisahaeng following the Byeongja journey, line drawing was an art trend in Japanese painting circles. Due to line drawing, unlike Kim Myeong-guk who joined Gyemisahaeng following Byeongja journey, there are no known works of Lee Gi-ryong` line drawing. Unlike Kim Myeong-guk, who left a line drawing, Lee Gi-ryong did not leave a piece of a line drawing, which suggests that there was a difference in the roles and activities of the two painters dispatched. As an entourage painter, Kim Myeong-guk, who had drawn pictures to respond to the request of the Japanese side, conveyed his activity history through the records while it is difficult to find Lee Gi-ryong`s activities. It is thought that Joseon undergoing Jeongmyohoran (Injo 5) and Byeongjahoran (Injo 14) was supposed to try to record the military information of the other country in the diplomatic activities and this mission may have been given to Lee Gi-ryong. He was a painter who represented Joseon in a public position rather than as an individual painter, and his performance has been evaluated within such a category. As an entourage painter, Lee Gi-ryong whose personal works do not exist, was studied by extending the category of Painter Lee Gi-ryong`s activities further, to examine his inner and outer activities before and after the entourage painter by looking into his family background and his activities in Dohwa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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