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아차산성을 둘러싼 삼국의 영역 변천 = Territorial Trend among Three Kingdoms Over The Achasanseong Fortress
저자
장창은 (국민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07-151(45쪽)
KCI 피인용횟수
5
DOI식별코드
제공처
King Chaekgye(r.286~298) of Baekje rebuilded Adanseong Fortress[located in Achasan] and Saseong[Samseong-dongtoseong] provided for invasion of Goguryeo. After the enthronement of King Gwnggaeto(r.391~412), Goguryeo attacked territory of Baekje. As a result, In 396, Adanseong Fortress occupied by Goguryeo. But Baekje counterattack After the Goguryeo’s Army is pulled out of the Hanseong. In 398.3, Baekje occupied Ssanghyunseong Fortress which was located in route of communication at Masingnyeongsanmaek. Naturally, Adanseong Fortress will be reoccupied by Baekje.
In 475, King Jangsu(r.413~491) attacked the capital of Baekje which named Hanseong. At this time, King Gaero(r.455~475) of Baekje was sent to the Adanseong Fortress. he had killed there. As a result, Baekje transferred the capital from Hanseong to Ungjin[Gongju-si in Chungcheongnam-do].
In 551~553, Silla occupied the Hangang basin. King Jinheung(r.540~576) patrolled the Bukhansan[located in Seoul]. In 556.7, King Jinheung established Biyeolheulju at Anbyeon-gun in Gangwon-do. Also the next year established Bukhansanju at Bukhansan. With this, Silla consolidated their Terresterial rule in lower reaches of Hangang basin. Silla occupied the control of the Gulf of Gyeonggi.
In 603.8, Goguryeo reattacked territory of Silla which named Bukhansanseong Fortress[located in Gwangjin-gu, Seoul]. But that battle also ended in a Victory for Silla. After the battle of Bukhansanseong Fortress, King Jinpyeong(r.579~632) abolished Namcheonju[Ichon-si in Gyeonggi-do]. Instead He reestablished Bukhansanju at north of Hangang. It means that Silla constructed the defense line in Hangang basin. Since territorial battle at the North Hangang basin between Goguryeo and Silla has continued. At this time, Bukhansanseong Fortress[Achasanseong] the best strategic position in Hangang basin. In the end, In 7th century Bukhansanseong Fortress played the role base fortress for block the southward advance of Goguryeo.
백제는 책계왕(286~298) 원년에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阿旦城과 蛇城[삼성동토성]을 수리하였다. 책계왕이 구축한 한성의 방위체계는 상당기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광개토왕(391~412)이 즉위한 후 백제에 공세를 가하면서 아단성은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다. 「광개토왕비」 영락 6년(396)조에는 광개토왕이 阿旦城을 포함한 58성을 백제로부터 공취한 내용이 남아 있다. 58성의 위치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광개토왕비」와 「충주비」에 나오는 古牟婁城이 원주・춘천 등 죽령로상에 있었다는 점과, 58성이 한강 이북에 소재하기에 협소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해 남한강 상류설을 지지하였다. 아단성의 위치는 영락 6년조의 58성이 공취한 순서로 기술된 것으로 보고, 고모루성과의 기술 순서 차이가 크므로 아차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아단성은 475년 장수왕(413~491)의 한성 공략과정에서 재등장한다. 곧 고구려군은 南城에서 도망가는 개로왕을 붙잡아 아단성 아래로 보내 죽였다. 장수왕은 한성을 공략한 후 포로 8천을 거느리고 돌아갔다. 이때 주력군의 일부가 아단성에 남아 백제의 동향을 계속 주시한 것 같다. 백제가 熊津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미 파괴된 한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성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아단성에 고구려군이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475년 이후 아단성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폐성된 듯하다.
603년 고구려 영양왕(590~618)은 신라 北漢山城을 기습하였다. 이 때의 북한산성은 아차산성에서 ‘北漢’・‘漢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면서 아차산성임이 유력해졌다. 신라는 604년에 남천주를 폐지하고 다시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진흥왕대 북한산주의 중심지가 북한산 일대였다면, 604년에 재설치한 북한산주의 중심지는 아차산성이었다.
신라는 629년 8월에 고구려 낭비성[포천 반월산성]을 선제공격하여 빼앗았다. 신라가 낭비성을 공격한 까닭은 신라 북진의 거점인 북한산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포천천로를 이용해 북진할 수 있는 거점성에 대한 확보차원이었다. 신라는 낭비성 공략 이후 한탄강 유역으로의 진출에 주력하였다. 그에 따라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은 임진강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고구려는 신라의 한탄강 유역 진출과 우수주의 설치로 인해 죽령로와 포천천로 방면이 교착되자 작전선을 바꾸었다. 638년 고구려가 七重城[파주시 적성면]을 공격한 것은 그 서막이었다. 이후 고구려는 655년 백제・말갈과 연합하여 신라 북변의 33성을 빼앗았다. 655년 작전의 결과 고구려는 죽령로를 회복하였고, 661년에는 이를 경유해 述川城[여주군]을 공격한 후 남한강을 따라 북상해 북한산성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북한산성의 攻城戰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고구려는 660년에 신라의 칠중성을 재공격하였다. 결국 칠중성은 고구려의 수중에 넘어갔다. 그러나 칠중성의 입지 조건 때문에 고구려는 칠중성을 영유하지 않은 채 662년 이전에 퇴각하였다. 고구려가 공략하려 했던 한강 이북의 최종 목표물은 북한산성이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북한산성 공략과 한강 유역 회복은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7세기 신라의 북한산성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거점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11-0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SA-CHONG(sa)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11 | 1.11 | 0.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3 | 0.71 | 1.55 | 0.5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