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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의 생애와 독립운동 = Yang Geun-hwan's Life and Independence Movement
저자
윤소영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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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3-22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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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처
황해도 연백 노비 출신의 양근환(1894~1950)은 1916년 일본대학 전문부 정치과에 입학했으며, 1921년 2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참정권운동을 벌이고 있던 민원식을 도쿄스테이션 호텔 314호실에서 처단했다. 민원식은 호텔에서 즉사했으며 양근환은 살인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두 차례 감형을 받은 끝에 1933년 2월에 출감했다.
양근환에 대한 연구는 2011년에 장신에 의한 시론적 학술연구가 있는 정도인데, 장신은 이 논문에서 양근환의거는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글은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1920년 전후 도쿄 유학생 독립운동의 자장 안에서 양근환 의거를 재조명하고 양근환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한다.
양근환 의거는 3.1운동 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치운동(참정권운동)에 대해 절대독립노선을 견지하고 있던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 사회의 의지를 대변하여 일어났다. 양근환은 주변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민원식 처단은 양근환이 단독으로 계획적으로 거행한 것이다.
재판정에서 양근환과 양근환 측 변호사가 내세운 ‘우발적’이었다는 주장은 형량을 줄여 사형을 면하기 위한 전술적인 선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양근환은 법정에서 민원식에게 벼루를 던졌다고 증언했지만, 거사 후 처음으로 민원식의 호텔 방에 들어온 호텔 측 종업원은 벼루는 그대로 탁자 위에 있었다고 진술한 점, 민원식에게 양근환이 자신의 이름을 속인 점, 민원식을 면담하기 전에 단도를 준비하는 등 사전계획이 있었고, 친구인 이은종과 신현성에게 거사의 의지를 전했다는 점, 거사 후 자신의 행동을 ‘見義不爲는 無勇(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 한 점, 형기를 만료하고 출옥한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추호의 후회도 하지 않는다는 진술 등은 양근환 의거가 계획적으로 결행되었음을 방증하는 사실이다.
양근환의 민원식 처단에 대해 당시 도쿄 유학생 사회, 중국과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은 격찬을 하며 “의거”로 반겼다. 도쿄 유학생들은 변호사 섭외와 비용 부담, 양근환의 재판 참관, 옥바라지, 양근환 가족을 돌보는 등, 헌신적으로 양근환과 그의 가족을 돌보았다. 이것은 그의 거사가 비록 단독 거사이지만 유학생들 모두의 총의를 받아 거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33년 양근환의 출감 후 1945년까지의 그의 삶은 근황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친일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1945년 해방 후 양근환은 ‘혁신탐정사’를 조직하여 친일인물 조사와 적발,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정치운동에 적극 투신하다 1950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실종, 죽음을 맞이했다. 양근환 의거는 2.8독립운동과 3.1운동의 성과가 자칫 참정권운동으로 왜곡되려는 상황 속에서 이를 저지하고 한국인의 절대독립론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립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Yang Keun-hwan (1894~1950), a slave from Yeonbaek, Hwanghae Province, entered the department of politics at Nihon University on April 1916.
Yang Keun-hwan stabbed Min Won-sik, who was campaigning for the Korean suffrage movement in Tokyo, with a knife on February 16, 1921, in Tokyo Station Hotel Room 314. Min Won-sik died instantly in the hotel, and Yang was sentenced to death for murder. Since then, his sentence has been shortened twice and released in February 1933.
This article critically examines previous research and attempts to reexamine Yang Geun-hwan's independence movement within the scope of the Tokyo Korean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around the 1920s and examine Yang's life.
Yang Geun-hwan's execution of the pro-Japanese Min Won-sik was represented by the will of the Korean student community in Tokyo, who maintained absolute independence for the self-government movement (the suffrage movement) that emerged after the 3.1 movement. Yang was helped by the surrounding Korean students, but the civil action was carried out by Yang Geun-hwan alone.
The claim that Yang Geun-hwan and Yang's attorneys have been “accidental” should be seen as a tactical choice to reduce the sentence and avoid the death penalty. In fact, Yang testified that the court threw a ink stone to Min, but the hotel employee who entered the room after the incident stated that the ink stone was on the table, that he had deceived his name, He had planned in advance, and told his friends Lee Eun-jong and Shin Hyun-sung that he was willing.
After killing Min, Yang said, "It is not courageous that human beings see justice and do not practice it." He said he never regretted his behavior even after his sentence expired. This fact proves that Yang Geun-hwan's plan was executed intentionally.
Yang killed Min at the time, and the Korean student community in Tokyo and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i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greeted him as "patriotic deed". Korean students in Tokyo devoted themselves to Yang Geun-hwan and his family, including attorney at law and paying fees, attending Yang's trial, and taking care of his family. This can be interpreted as meaning that his virtues were carried out by gathering the will of all Korean students.
His life from 1933 to 1945 after Yang was released from prison is known for his daily life, but his pro-Japanese activities are not seen. After liberation in 1945, Yang Geun-hwan organized an “Innovation Investigator”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investigation and discovery of pro-Japanese figures and the political movement to build an independent nation. He died and disappeared during the Korean War in 1950.
Under the situation that the results of the 2.8 Independence Movement and 3.1 Movement would tend to be distorted into pro-Japanese suffrage movement, Yang Geun-hwan should be positioned as an independence movement that played a decisive role in reinforcing Korean independence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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