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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독립전쟁’ 시기 독립군들의 동향 재검토 = Review of the trend of the Independence Armies during the period of ‘War of Independence in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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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연구(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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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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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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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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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0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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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1910s, Korean communities abroad, including Manchuria and Primorsky, prepared for a war of independence in order to regain national rights in their homeland. When the March First Movement broke out in 1919, the Korean community in Manchuria and Primorsky organized an independent army and embarked on a war of independence. Koreans from many backgrounds and ideas who lived in Manchuria and Primorsky continued their war of independence in order to restore their country’s sovereignty. The Battles of Bongodong and Cheongsanni were also part of the ‘Independence War in 1920’. After the Battle of Bongodong, the independent armies in North Kando held a joint meeting of independent army organizations led by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s a result, independent armies in North Kando were organized into three military organizations under the plan of integration into Mindan(民團) and Corps(軍團). However, this is only a temporary integration. As a result, ‘alliance of three organizations’, which led to victory in the Battle of Bongodong, was dissolved. When conflicts arose between the Gunmudodokbu(軍務都督部) and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大韓國民會), Hong bumdo led his forces to move to Helong, while Choi Jin-dong led the military governorate to Wangqing. Ahn-mu and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established their own military organization, the Korean National Military Command, and moved to Helong. Choi Jin-dong returned to Wangqing to rebuild his military strength and continued the War of Independence. Ahn-mu continued the Independence war to conduct an advance operation to Korea, while rebuilding its military strength. The Daehan Sinmindan had close relations with Lee Dong-hwee and fought the War of Independence. After the merger with the Korean Socialist Party, the headquarters and Hunchun branch took part in the Russian Civil War in Primorsky and took a strategy to fight the War of Independence. On the other hand, Wangqing branch supported the movement for the unification of the independent army centered on Hong Beomdo in North Kando.
더보기1910년대 만주와 연해주 등 해외 한인사회는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독립전쟁을 준비해 나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와 연해주 한인사회는 독립군을 조직하고 독립전쟁에 나섰다. 만주와 연해주에 거주하던 수많은 배경과 사상을가진 한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독립전쟁을 이어나갔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도 이러한 ‘1920년 독립전쟁’ 중 한 부분이었다. 봉오동전투 이후 북간도 지역 독립군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파견원들을 중심으로 독립군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여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민단과 군단으로 이원화된 통합 방안에 따라 북간도 독립군은 3개의 군무기관으로 편성되며 통합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통합에 그치고 말았다. 그 결과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3단 연합’이었던 대한북로독군부는 해체되었다. 군무도독부와 국민회 간 갈등이 발생하자 홍범도는 부대를 이끌고 화룡현으로 이동했고, 최진동은 군무도독부 세력을 이끌고 왕청현으로 이동했다. 안무와 대한국민회는 자체 군사기구인 대한국민군 사령부를 창설해 화룡현으로 이동했다. 최진동은 왕청현으로 돌아와 전력을 재정비하고 독립전쟁을 이어나갔다. 안무는 청산리전투를 앞두고 전력을 재정비하는 한편, 국내진공작전을 시도하며 독립전쟁을 이어나갔다. 대한신민단은 이동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독립전쟁을 수행해 나갔다. 대한신민단은 한인사회당과의 합당 이후 본부와 훈춘지단은 연해주에서 러시아 내전에 참전하며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전략을 취하는 한편, 왕청지단은 북간도에서 홍범도를 중심으로 한 독립군 통합운동을 지원해 나갔다. 청산리전투 이후 이동휘와 김규면 등은 독립군들의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중로연합선전부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시켜 재정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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