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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전라도 교방의 현황과 특징 = The History and Characteristics of the Chŏlla Province Kyobang in the Late Chosŏ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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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사학보(Journal of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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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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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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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65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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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은 조선 후기 궁중과 지방 관아의 예술문화를 주도한 곳이다. 특히 조선 후기 지방 문화를 연구하는데 지방 교방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통문화학계에서는 원전 자료 발굴 미비와 중앙과 달리 지역 연구라는 한계에 밀려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본고는 조선 후기 전라도 교방을 통해 현재까지 음악계에 알려지지 않은 지방 관아의 모습을 한국음악학계에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시 전라도 교방에서 전개되었던 규모와 기생들을 통해 전라도 전통예술의 깊이와 넓이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전국 8도 관청의 교방을 『관찬읍지』를 기초 삼아 집계한 결과 함경도 6곳, 평안도 10곳, 강원도 1곳, 충청도 3곳, 전라도 6곳, 경상도 5곳이 존재했으며 황해도와 경기도는 단 한 곳도 설치되지 않았다. 조선 후기 8도에 교방의 숫자는 31개소였다. 특히 교방이 많이 설치된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 경상도는 각각 중국사신과 일본사신이 오가는 사행로에 포함돼 있어 교방의 임무가 외국사신 등을 접대한 곳으로 확인됐다
둘째, 관아에 존재했던 교방의 명칭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예를 들면 함경도 함흥부는 백화원, 갑산부는 어화원으로, 평안도에서 운산군은 교방청, 평양부는 교방과 기생청을 함께 썼으며, 태천현 역시 기생청으로, 창성부의 경우 교방청으로 사용하였다. 충청도에서는 공주감영이 기생으로 기록되었으며, 전라도에서는 광주목과 무주부에서 교방청이란 기록이 보이며, 제주목은 장춘원으로, 그리고 경상도 경주에서는 악부로, 창원부에서는 관비방으로 각각 다르게 불려졌다.
셋째, 또한 조선 후기 지방체제가 부, 목, 군, 현으로 운영되었던 점을 감안해 교방도 가장 큰 지역을 담당한 부에서 규모가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성천부 교방은 15칸으로 가장 컸으며, 창성부 10칸, 평양부 8칸, 갑산부 어화원 5칸, 평양부 기생청 5칸, 공주감영 기생방 5칸, 순천 좌수영 기생청 3칸으로 나타났다.
넷째, 기생의 존재에 있어서도 각 도에 위치한 감영에서 가장 많은 숫자로 집계되었다. 평양감영의 기생은 총 180명으로 평안도에서 가장 많았으며, 함경도의 감영이 있던 함흥에서는 44명, 강원도 감영이 있던 원주는 20명, 전라도 감영인 전주부에는 34명, 경상도 감영이 있던 대구감영과 대구부에는 66명이었다. 다만 황해도의 감영인 해주부에는 기생 10명이 존재한 반면 황주목에 15명이 있었다. 이는 황주가 연행로에 포함되므로 기생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섯째, 전라도 교방에 있어서 전주감영에는 제일 큰 규모의 장악청이 고지도에서 나타났으며, 무주부에서는 당시 공고에 보관되어 있던 악기와 문물이 소개되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무주부에서는 포구락과 선유락, 검무, 승무 등의 춤과 이에 수반된 반주, 그리고 물목이 존재해 당시 궁중과 지역간의 연희교섭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섯째,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가 이어지는 시점에서 교방은 기생조합내지 권번으로 그 역할이 이어졌다. 조선후기 전라도 교방 가운데 권번으로 이어진 곳은 전주․광주․순천 등 세 곳이었다. 그러나 무주․순창․제주 등에는 권번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조선 후기 교방은 목민관의 취향에 따라 기생수가 변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권번 역시 음악과 무용 등의 수요와 공급이 ...
Kyobang 敎坊 (office of female entertainer) was the very place where it took the leadership in art-culture of the royal court and local government offices in the later Chosŏn Dynasty. Especially, it has been essential to study the provincial cultures of those days. Until now it is true that the deep and real study has not been made due to an inert excavation of ancient materials and limits of local study unlike central area in tradition-culture academic world.
Accordingly the main aim of this report is to introduce various kinds of the unknown government offices to Korea-Music world through the Chŏlla kyobang 全羅敎坊 of the late Chosŏn Dynasty. Moreover I want to put an emphasis on finding out depth and width of Chŏlla culture through the sizes of kyobang and numbers of kisaeng 妓生 (female entertainers) increased in those days. That is the reason why I have a mind to study harder like this.
First, there were totally twenty-five kyobangs all over the country in those days; six in Hamgyŏng province 咸鏡道, ten in P'yŏngan province 平安道, one in Kangwŏn province 江原道, three in Ch'ungch'ŏng province 忠淸道, six in Chŏlla province 全羅道, and five in Kyŏngsang province 慶尙道 which were figured based on Kwanch'an ŭji 官撰邑誌 (Records of Towns by Government), official regional record in Chosŏn. However, there was no places in Hwanghae and Kyŏnggi provinces. There were totally thirty-one in nationwide (in eight provinces) in the later Chosŏn Dynasty. Provinces where had been built and managed many kyobang were P'yŏngan, Hwanghae, Chŏlla, Kyŏngsang provinces. Perhaps that's chiefly because the places were located in a gateway to receive, entertain and serve an Chinese and Japanese envoy in sincere hospitality.
Second, the names of the kyobang existed in governmental offices were varied. For example, Paekhwawŏn 百花院 at Hamhŭng-pu 咸興府 and Ŏhwawŏn 語花院 at Kapsan-pu 甲山府 in Hamgyŏng province, Kyobangch'ŏng 敎坊廳 at Unsan-gun 운산군 in P'yŏngan province, Kisaengch'ŏng or Kyobang in P'yŏngyangbu 平壤府 etc. Also, there had been recorded differently Kyobangch'ŏng according to the region: Kisaeng in Ch'ungchŏng, Kyobangch'ŏng in Chŏlla, changch'unwŏn 臧春院 in Cheju 濟州, and Musical center in Kyŏngju 慶州, and Kwannobang 官奴房 in Ch'angwŏn 昌原.
Third, they were largely different in sizes because the local system in the late Chosŏn Dynasty was administered as a unit of pu 府, mok 牧, kun 郡, and hyŏn 縣. For example, Kyobang in Sŏngch'ŏn-pu 成川府 composed of fifteen partitions was the largest, ten partitions in Ch'angsŏng-pu 昌城府, eight partitions in P'yŏngyang-pu, five partitions in Ŏwhawŏn in Kapsan-pu, five partitions in Kisaengch'ŏng 妓生廳 in P'yŏngyang-pu, five partitions in Kisaengbang 妓生房 in Kongju kamyŏng 公州監營 (provincial office at Kongju), three partitions in Sunch'ŏn 順天.
Fourth, there were, of course, so different in numbers of kisaengs according to the position of kamyŏng : one hundred and eighty members in P'yŏngan kamyŏng 平安監營, forty-four in Hamgyŏng kamyŏng 咸鏡監營, twenty in Kangwŏn kamyŏng 江原監營, thirty-four in Chŏlla kamyŏng 全羅監營, sixty-six in Kyŏngsang kamyŏng 慶尙監營.
There were ten kisaengs at Haeju-pu 海州府 in Hwanghae kamyŏng, while fifteen kisaengs were in Hwangju-mok 黃州牧. Because Hwangju was on the passing point which many Chinese envoys were entertained by kisaengs.
Fifth, we can see the size of the Changakch'ŏng 掌樂廳 where contained musical instruments and things of the times found in Muju-pu 茂朱府, the largest kyobang in Chŏlla kamyŏng indicated in ancient materials. Particularly, we can guess the entertainment exchange between the Royal Court and the local by means of many proofs shown in Muju-pu which had P'ogurak 抛毬樂 (Ball Throwing Dance), Sŏnyurak 船遊樂 (Joyful Boat 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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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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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 0.42 | 0.963 | 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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