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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한 단면 : 그것은 어떻게 대한제국의 망국과 연관되었나? = Influence of the Russo-Japanese War upon Destruction of th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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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한국정치외교사논총(Journal of Korean Political and Diplomatic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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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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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KDC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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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89-150(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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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Russo-Japanese War was crash between two countries, Russia, who wanted to launch to Pacific Ocean, and Japan, who wanted to construct bridgehead on the land to swallow the Korean peninsula. Contrary to the Sino-Japanese War, that was a war of Japan, who wanted to escape from the hard time of early capitalism, Russo-Japanese War was a struggle between two countries to obtain the territorial ground on the Korean peninsula. So as to say, Russo-Japanese War was a reluctant and unprepared war for Russia against Japanese sunrising attack on the third land on Korea. [2] A half of the Russo-Japanese War was diplomatic struggle rather than of bayonets. That War was victory of Japanese diplomacy. While the Russia was timid under the feudalism, Japanese under the leadership of count Ito Hirobumi, leading Mutsu Munemitsu, Minister of Foreign Affairs, Kurino Shinichiro, Cosul General in Washington, Komura Jutaro, Viceminister of Foreign Afaires, and Minister of Justice concurrently Plenipotentiary Extraordinary Ambassador, Kaneko Kentaro, were superior to those of Russia in capacity and loyalty, Some of them were Member of “The Japan Club of Harvard University” under the auspices of Theodore Roosevelt. They were core group in Japanese diplomatic circle. [3] The reason of defeat of Russia army derived form the corruption in the Tsar Palace. The War was fighting between the corrupted Romanov Dynasty and Japanese patriotic militia. In spite of many pleads of “better life of the people,” corruption of royal family obstinately oppressed the mass as heritage, under which they lost their willingness morale to fight against Japan. [4] Russo-Japanese War was broken out in the innocent Korea for which was irresponsible. What is worse was that it influenced upon the ruin of Chosun Dynasty(Korea). Korea was really irresponsible for the War. No. At that time Korea was in charge of its own country. Whether was it neutrality or participation in the war on a certain side, Russia or Japan, but King Gojong hesitated and high officials counted their own interests. For them, the destiny of his country was not important. In this respect, the ruin of Korea on account of war between Japan and Russia was Korea’s diplomatic fault. Whether of participation on a side or neutrality was not important. What was really necessary was royal resolve and unified decision of Royal Court. But They were not capable neither wise nor patriotic. The first mistake was King’s escape to Russian Consulate after the Murder of Queen(1895). [5] Why do we have to reflect the past tragic war? That is because the historical stage of the Russo-Japanese war in 1890-1900s was nothing changed in spite of a century’s lag-time. In the long history, a century is not enough to change or improve history fundamentally, so we have to reconsider the historical lesson form the war, reflecting upon this age. After 120 years, Russo-Japanese war has not ended, but suspended. The War is present progressive up to now.
더보기[1] 러일전쟁은 태평양의 진출을 노리는 러시아와 대륙에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일본의 이해가 충돌함으로써 벌어진 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이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영토의 점유를 중요하게 여겼던 일본의 전쟁인 것과는 달리, 러일전쟁은 영토를 목표로 삼는 제국주의의 충돌이 아니라 영향권을 확장하려는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랐다. 따라서 러일전쟁은 만주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두보로서의 한국을 침탈하려는 일본의 기습 공격에 대한 러시아의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다. [2] 러일전쟁에서 전쟁의 절반은 외교였다. 이 전쟁은 일본 외교의 승리였다. 러시아가 아직 탈봉건사회를 거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일본의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정점으로 하여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 주미공사 구리노 신이치로, 외무성 부대신 고무라 주타로, 그리고 러일전쟁 당시의 법부대신이자 견미(遣美) 특사였던 카네코 겐타로와 같은 미국 유학 출신 외교관들, 특히 하버드대학교일본유학생회(The Japan Club of Harvard University)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 [3] 러시아의 패인은 부패한 왕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러일전쟁은 부패한 차르 왕조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신흥 일본의 결전이었다. 많은 혁명과 개혁 세력이 등장하여 공익(公益)을 내세우면서 “더 좋은 삶”을 약속했지만, 부패는 늘 유산처럼 민중을 짓눌렀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에게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염치없는 일이다. 부패에 대한 반응은 분노가 아니라 체념이다. 부패한 관리에 지친 민중들은 조국을 위해 싸울 전의나 사기를 잃게했다. [4] 내 나라에서 벌어진 제3국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멸망한 것은 한국 외교의 책임이었다. 중립이든 참전이든 멈칫거림이 없는 결단이 필요했으나 조선의 왕실은 그렇지 못했다. 문제는 아관파천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의 문제는 한국의 멸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 무렵이 되어서는 어느 쪽이 이기든 한국은 승자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운명이 그 지경에 이르도록 지배계급은 왜 지혜롭게 망국에 대처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5]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는 1890-19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비록 1세기가 넘은 시차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시대의 4국 관계를 보면 러시아·중국·일본에게 주는 한국의 의미가 한국에 주는 그들의 의미를 능가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국제 관계의 비극성도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부과되었다. 우리는 이제 다시 그 시대를 반추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위상에 대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러일전쟁의 유산과 교훈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런 점에서 러일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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