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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 · 후기 안동지역 사원의 동향과 용수사의 운영 = Trend of Buddhist Temple in the Andong Area and Management of Yongsusa(龍壽寺) in the Middle and Late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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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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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건국하면서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을 표방하였다. 태종은 사원寺院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 하면서 불교계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불교는 다시 부흥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동은 당시 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배층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고, 조선후기 광범하게 진행되던 토지의 사유화와 산업의 발달은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원을 재건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안동지역 사원을 재건할 때 대부분 사원 소속의 승려들이 주도하고, 승려들이 재원을 염출하여 공사를 진행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예안의 용수사의 경우 예안지역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고려 명종대 창건된 사원이었다. 조선초기 불교계가 상당히 난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까지는 조선은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다. 그러므로 용수사는 예안지역의 사족들과 연대를 하면서 19세기까지 어느 정도 절을 유지할 수 있었다. 16세기 이후 조선의 사상계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강력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었지만, 유학자 이외에 지식인으로서 승려집단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승려들과 유학자들은 상호 긴밀한 교유를 하고 있었다. 특히 용수사의 경우 도산서당을 용수사의 승려들이 짓는 등 퇴계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임란이후 태백산 사고를 수호하는 승군을 내어야 하는 사원이었으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용수사는 1728년 무신란 당시에도 무기를 낼 수 있었고, 19세기까지 사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용수사는 퇴계학파의 초기부터 이황과 그의 문인들이 학문적 토론을 하는 장으로 이용되었고, 이러한 관계로 말미암아 퇴계학파의 후학들은 용수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744년 이세택이 『용산지』(『광려지匡廬誌』)를 저술한 것도 용수사가 퇴계학파의 연수 중의 한 곳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e Joseon Dynasty proclaimed the policy of respect for confucianismbut restraint for buddhism. King Taejong confiscatedlands and slaves of buddhist temples in order to undermine the economicbase of buddhism.
Buddhism took the chance of revival after Japanese invasion in1592. The performance of monk soldiers during Japanese invasionin 1592 could change the negative perspective of ruling class onbuddhism. The privatization of land and development of agriculture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me economic backgrounds for reconstructingtemples damaged by the war. Buddhist monks led thereconstruction of temples in the Andong area as contributing expensesafter the war.
Yongsusa(龍壽寺), a representative buddhist temple in Yean, was built during King Myeongjong’s reign of Goryeo. Although buddhism was faced with difficult situation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t had remained a powerful influence until the 16<SUP>th</SUP> century. Thus, Yongsusa had been remained through solidarity with the local gentry in Yean until the 19<SUP>th</SUP> century. The philosophical world of Joseon Dynasty united strongly with focusing on neo-confucianism after the 16<SUP>th</SUP> century. However, buddhist monks and confucian scholars interacted closely with each other because the monk school as well as confucian scholars had belonged to intellectuals until then. The monks of Yongsusa, in particular, had close relationships with Toegye school by constructing Dosan Seowon(陶山書院). Yongsusa also deserved to be preserved at the national level since it sent monk soldiers to protect a library in Taebak mountain after Japanese invasion in 1592. Therefore, Yongsusa had remained until the 19<SUP>th</SUP> century as producing weapons for military coup in 1728.
Followers of Toegye school recognized positively Yongsusa because Lee Hyang and his scholars had used the temple as a space for academic discussion. Since Lee Saetaek firmly believed Yongsusa as an education institute for Toegye school, he wrote Yongsanji in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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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8-0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 Studies Adancement Center ->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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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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