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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제례악 복식의 변천과 그 의미: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 Transition of Performance Costume for Court Rituals: From the Period of Modernization to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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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국악원논문집(Journal of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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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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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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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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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4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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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의 연주복식과 일무복식을 중심으로 궁중제례악 복식의 색상과 재료 그리고 형태 등의 변화를 살펴보고, 그 변화된 궁중제례악 복식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찾는데 목적이 있으며, 현재 전승되는 궁중제례악 복식의 역사성을 조망하는 데 의의가 있다.
문묘제례악 연주복식의 문제는 백주대와 오피리가 어느 시기에 어떤 계기로 남사대와 목화로 바뀌었는지에 관한 것인데. 문묘제례악 연주복식의 백주대는 늦어도 1921년 이후에 남사대로, 오피리는 1930년 이전에 목화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문묘제례악 일무복식의 문제는 검은색의 조주의가 언제 어떤 계기로 붉은색의 홍주의로 변화되었는가 하는 것과, 금동혁대는 언제 어떤 계기로 남사대로 바뀌었는지, 또 오피리가 언제 목화로 바뀌었는지에 관한 것인데, 1897년에 조주의는 홍주의로, 백주대는 남사대로 바뀌었고, 오피리는 1930년 이전에 목화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종묘제례악 연주복식 문제는 개화기 무렵 흑사대였던 대가 어느 시기에 남사대로 바뀌었는지, 오피리는 어느 시기에 목화로 바뀌었는지에 관한 것인데, 흑사대는 1892년에 남사대로 바뀌었고, 오피리는 1930년 이전에 목화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종묘제례악 연주복식의 경우 흑단령과 흑립을 착용한 경우도 있어 연주복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고 보았다. 종묘제례악 일무복식 문제는 관(冠)․의(衣)․대(帶)․리(履)의 변화가 언제 어떤 계기로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인데, 종묘제례악 문무(보태평) 복식은 1897년 이전에 진현관은 복두로, 남주의는 홍주의로, 적말대는 남사대로 바뀌었고, 오피리는 1930년 이전에 목화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무무(정대업) 복식도 피변이 복두로 바뀌었고 나머지는 문무(보태평과) 동일하게 바뀌었고, 그 시기도 동일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변화 시기에 있어서 종묘제례악 연주복식의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문묘제례악 연주복식이 가장 나중에 변화되었다. 변화 내용 면에서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의 일무복식의 변화가 가장 컸다.
연주복식의 변화 시기는 1892년, 1897년, 1921년, 1930년이 기준이 되었다. 1892년은 임진왜란 300주년되는 해로, 이 때 악제의 개정이 있었고, 1897년은 대한제국의 건립으로 인해 악제가 개정된 해이다. 1921년과 1930년은 일제강점기에 속하는 해이며, 이 떄의 변화는 일제강점이 변화의 요인인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복식의 변화 결과 문묘제례악 연주복식과 종묘제례악 연주복식의 구분이 없어졌고, 또 연주복식과 일무복식의 구분도 없어졌다. 문묘제례악의 문무와 무무의 관은 서로 구분되지만, 종묘제례악의 일무의 관은 문무(보태평)와 무무(정대업)가 복두로 통일되었다. 대(帶)는 모두 남사대로 통일되었고, 오피리는 모두 목화로 통일되었다.
조선시대 궁중 연주복식은 정해진 규정이 있었으나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고,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의 변화는 다른 시대의 변화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각 제례의 종류와 용도별로 다르게 규정되어 있던 제례악 복식이 거의 동일한 형태로 통일됨에 따라 각 제례악 복식이 갖는 의미가 퇴색되었고, 다양성이 사라졌다.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궁중제례악 복식의 변화의 계기는 1892년의 임진왜란 300주년, 1897년의 대한제국의 건국 등 이...
The study aimed to examine transition based on Yukjeonjorye compiled right before 1876 with regard to the time of change of shapes and colors by costume component and the background centering on performers of Deungga and Heonga used in royal ancestral rites music and ritual music in the Confucian shrine as well as Munmu lmuweon and Mumu lmuweon.
With regard to performance costume for Deungga and Heonga used in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Baekjudae and Opiri were changed after the period of modernization. Baekjudae turned into Namsadae after 1921 and Opiri was transformed into Mokhwa before 1930. As for costume for Munmu and Mumu of Ilmu used in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Jojuui, Baekjudae and Opiri were changed. Jojuui was transformed into Hongjuui in 1897, and Baekjudae was changed into Namsadae. Opiri was transformed into Mokhwa before 1930.
With regard to performance costume for Deungga and Heonga used in royal ancestral rites, only the Heuksadae and Opiri were changed. Heuksadae was altered to Namsadae in 1892, and Opiri was transformed into Mokhwa before 1930. As for Munmu (Botaepyeong) costume worn during the royal ancestral rites, Jinhyeonwan was changed into Bokdu in 1897, and Namjuui was transformed into Hongjuui, and Jeokmaldae was modified to Jeokmaldae. Opiri was changed into Mokhwa before 1930. As for Mumu (Jeongdaeeop) costume, Pibyeon was changed into Bokdu, and the remainder was transformed in the same way and at the same time as Munmu (Botaepyeong).
In summary, performance costume for Deungga and Heonga used in the royal ancestral rites music was changed the first, and that worn during the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was transformed the latest. Ilmu costume worn during the royal ancestral rites and the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was changed the most. As for the performance costume for Deungga and Heonga used in the royal ancestral rites and the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only the Dae was changed. However, in case of performance costume worn during the royal ancestral rites, Heukdanryeong and Heukrip were worn, which indicates that the performance costume was not properly established once.
The time of change in costume was based on 1892, 1897, 1921 and 1930. Akje was revised in 1892, the 300th anniversary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as the Daehan Empire was established in 1897, the Akje was amended. The year 1921 and the year 1930 belonged to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Japanese occupation is considered as a reason for the change.
As a result of changes in costume, distinctions between costume worn in the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disappeared, and division between performance costume and Ilmu costume ceased to exist. Munmu and Mumu wore different hair bands during the ritual formalities in the Confucian shrine, but in the royal ancestral rites, Munmu (Botaepyeong) and Mumu (Jeongdaeeop) wore Bokdu. Dae was unified as Namsadae, and Opiri was integrated as Mokhwa.
There were regulations on court performance costume during the Joseon Dynasty, but they were revised as time went by, and change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fter the modernization period have different meanings from transition of costume from other eras. As the performance costume that was distinguished by ritual was unified in a similar way, their distinction became meaningless, and their diversity disappeared. The performance costume worn during the royal ancestral rites that had been transformed from the modernization period to the Japanese colonial era carries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they have been handed down until toda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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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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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1 | 0.41 | 0.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3 | 0.29 | 1.006 | 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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