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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일본인식 - 불교계 愛國啓蒙運動의 사상적 단초 = Manhae Han Yongwoon's Cognition on Japan - Ideological Base of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s of Buddhism
저자
고영섭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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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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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29-27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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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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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research the recognition on Japan of Manhae Han Yongwoon(1879~1944), who opened an ideological trigger of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 of Buddhism in Daehan Empire (1897~ ). For Korean people at the end of Joseon Dynasty and beginning of Daehan, Japanese were recognized as invaders and leaders of modernization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at, Koreans at that time could not forgive the invader Japan who stole their country. However, they also recognized that they had to absorb the Japan as a leader of advanced culture. Those duplicity or double-sidedness of criticism and acceptance was common appearance of the intellectuals of that times. Having a sharp poetic sensitivity from his early days, Manhae went a step forward from cognizing western ideology and understanding modern civilization that he met from documents and books.
This process, he developed a new cognition on modernity, civilization and Japan, he opened his eyes to world geography and western ideology, through a Chinese Seogyeyeo(1795~1873)'s 『Yeonghwanjiryak』 and Yanggyecho(1873~1929)'s 『Eumbingsilmunjip』 to Manhae at that time. It was same as the case for Manhae, the West was 'modernity,' modernity was ‘civilization’, and a distributing center of the oriental 'civilization' was Tokyo, Japan. He could newly recognize Western and Japanese civilization as well as Japanese Buddhism by deepening understanding of Japan through a junket in Japan for 6 months.
There had been a path of Seogyeyeo and Yanggyecho to experience Japanese Buddhism and Western ideology. By the way, Yanggyecho also developed his points of views on modern civilization of the West by facing Kant and Bacon through a path of enlightenment theorists of Japanese Meiji period, such as Hukujawa Yukichi (1835~1901), Inoue Yenryo (1858~1919) and Inoue Desjiro (1855~1944). This can be namely a process of 'ideology chain.' However, Manhae could not deeply recognize Japanese strategy of invasion until Buddhist Temples Ordinances came in full scale. Therefore, it was when he wrote 「A Letter for Korean Independence」 in prison after he got arrested by Japan as a national representative at 3.1 Independence Movements when he raised objections to Japanese Buddhism policy in full scale.
Manhae led the ideology of Korean people by writing 『Joseon Buddhism Theism』 and 『A Letter of Joseon Independence』 and by began publishing <<Citta-Mātra>> and publishing <<Buddhism>>. Such series of his efforts can be understood from the view of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s.' Being originated from Manhae,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s developed focused on Tyeogyeong, Sangyeon and Yookdang, and became the beginning of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s of Buddhism. Manhae emphasized that self-enhancement is the first priority for independence, since the people failed to enhance the nation which led to the loss of the nation. He implied that self-enhancement would bring independence, and independence would be the base for self-independence. Like that, he saw securing 'power' and 'capabilities' as the base of independence and self-enhancement. A series of his editorials like 『Joseon Buddhism Theism』 can be said to have been done as an effort of such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Movements..
이 논문은 대한시대(1897~ )에 불교계 애국계몽운동의 사상적 단초를 연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일본인식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선말 한초의 한국인들은 일본은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화의 선도자로 인식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한국인들은 나라를 빼앗은 침략자로서의 일본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진적 문물의 선도자로서의 일본은 흡수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지녔다. 이러한 비판과 수용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은 이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일찍부터 시인적 감수성이 날카로웠던 만해는 지식인들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을 목격하면서 종래 서지(書誌)로 만났던 서구사상 인식과 근대문명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중국인 서계여(徐繼畬, 1795~1873)의 『영환지략』과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음빙실문집』을 통해 세계지리와 서구사상에 눈을 떴으며 근대와 문명 그리고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다. 당시 만해에게 서구는 ‘근대’였고, 근대는 ‘문명’이었으며, 동양‘문명’의 집산지는 ‘일본 동경’이었다. 그는 6개월간의 일본 시찰을 통해 일본 이해를 더욱 심화시켜감으로써 서양 문명과 일본 문명 및 일본 불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만해의 서구사상 체험과 일본 및 일본불교의 체험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서계여와 양계초의 통로가 있었다. 그런데 양계초 역시 일본 명치시대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이노우에 엔료(井上圓了(1858~1919)/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라는 통로를 거쳐 칸트와 베이컨을 접하면서 서구의 근대문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세웠다. 이것은 이른바 ‘사상 연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해는 사찰령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일본의 침략 전략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가 일제의 불교정책에 본격적인 이의를 제기한 것은 3.1 운동 때 민족대표로 일제에 체포된 뒤 옥중에서 쓴 「조선독립의 서」를 쓰면서였다.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과 『조선독립의 서』 등의 저작과 <<유심>>지 창간과 <<불교>>지 간행 등을 통해 한민족의 정신을 이어나갔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애국계몽운동’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해로부터 시작된 애국계몽운동은 퇴경(權相老), 상현(李能和), 육당(崔南善)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불교계 애국계몽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만해는 자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었으므로 독립을 위해서는 자강이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강은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며 독립은 자강의 기반이 될 것임을 시사해 주었다. 이처럼 그는 독립과 자강의 근거를 ‘힘’과 ‘실력’의 확보로 보았다. 그가 쓴 『조선불교유신론』 등의 일련의 논설도 이러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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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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