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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新羅末),고려초(高麗初)의 순천(順天) 호족(豪族) 박영규(朴英規) = A Study on Bak Yeong-gyu, a Powerful Local Gentry of Suncheon Region during the Late Years of Silla and the Early Years of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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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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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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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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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37-16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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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에서 고려초의 시기에 걸쳐 순천을 대표하던 호족 박영규를 살폈다. 그의 출신과 세력기반을 더듬고, 그가 후백제 견훤 및 고려 왕건의 휘하에 들어가 활약한 내용을 헤아리며, 마침내 그가 순천의 해룡산신으로 추앙되기에 이른 경위를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박영규를 한층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더불어 고려시기 순천 지역사회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박영규는 수도 慶州에서 멀리 떨어진 순천의 토착세력 출신이었다. 王京人과 구별되는 地方人으로서 골품제에서조차 제외되는 낮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신라말 고려초의 시기를 맞이하여, 父祖 이래로 연안 해상교통의 요지인 해룡산성 일원을 근거 삼아 활동하며 세력을 키워간 끝에, 마침내 순천 일원을 대표하는 호족으로서 그 존재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박영규와 그 父祖는 방수군 시절의 견훤과 벌써 밀접한 사이였다. 그리하여 견훤의 거병에 가담하는 것은 물론 전남 동부지역 호족의 호응과 협조를 유도함으로써 견훤의 자립과 후백제 창업에 기여하였다. 박영규는 견훤의 사위이자 후백제의 장군이었다. 정권의 유력자 중 하나였던 그는 후백제의 군사적 팽창과 해상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후일 박영규는 신검의 왕위 탈취에 반대하여 견훤을 뒤따라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이바지함으로써, 세 딸을 왕실에 后妃로 들이는 등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유력자로 활약하였다. 박영규는 사후 해룡산신으로 추앙되었다. 대략 현종대(1009~1031) 즈음의 일이었다. 거란의 제2차 침입 당시 나주가 왕실 보위에 기여한 사실을 높이 평가한 현종은 나주를 크게 우대하였다. 반면에 순천은 邑格이 하강하고 관할영역이 줄어드는 등 상대적으로 위축을 면치 못하였다. 이에 순천의 토착유력자들은 박영규를 해룡산신으로 추앙함으로써 그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박영규를 앞세워 순천 역시 나주 못지않게 고려왕조에 기여하였음을 널리 알리고자 함이었다. 순천 또한 나주와 마찬가지로 우대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렇지만 해룡산신 박영규를 앞세운 순천 지역사회의 그와 같은 노력은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광종의 숙청으로 중앙에서 박영규 계열이 약화된 이후, 지역의 여론을 중앙에 전달하고 또 관철시킬 만한 순천의 연고세력이 조정 내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데 따른 일이었다.
더보기This paper studied Bak Yeong-gyu, a powerful local gentry of Suncheon region during the late years of Silla and the early years of Goryeo. First it examined his origin and foundation of power, and then deliberated on his activity under Gyeonhweon and Wang Geon, and finally watched how he was worshipped as a mountain god of Mt. Haeryongsan in Suncheon region. Thus it intended to help us describing Bak Yeong-gyu much more concretely and understanding the movements of Suncheon local community. Bak Yeong-gyu arose from indigenous local elites of Suncheon region far from Gyeongju, capital of Silla. He was a man humble in social standing as a local inhabitant excluded from even the “bone-rank”(golpum) institution. However he, ever since his father and grandfather, carried on maritime trade based on the zone of castle of Mt. Haeryongsan which was an important place of coastal seaway and extended his influence on local community during the late years of Silla and the early years of Goryeo and in consequence distinguished himself as a powerful local gentry in Suncheon region. Bak Yeong-gyu and his father and grandfather were intimately associated with Gyeonhweon while his guarding the southwest shore already. Thus they contributed to Gyeonhweon’s self-reliance and founding Later Baekje by conspiring with Gyeonhweon’s rising in arms and inducing powerful local gentry in the eastern region of Jeonnam district to act in concert with Gyeonhweon’s uprising. Bak Yeong-gyu was Gyeonhweon’s son-in-law and a general in Later Baekje. As an influential person of Gyeonhweon’s government 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military expansion and maritime activities of Later Baekje. Thereafter Bak Yeong-gyu entrusted himself to Wang Geon following Gyeonhweon against Sin’geom’s usurping the throne. Therefore he played an active part with cordial courtesy in Goryeo dynasty. Bak Yeong-gyu was worshipped after death as a mountain god of Mt. Haeryongsan during king Hyeonjong’s reign(1009~1031) probably. King Hyeonjong treated Naju county preferentially and promoted it to a higher rank. On the other hand Suncheon county was reduced to a lower rank and became withered. The indigenous local elites in Suncheon county coped with such situation by worshipping Bak Yeong-gyu as a mountain god of Mt. Haeryongsan. Through standing Bak Yeong-gyu as a symbol of Suncheon local community they intended to send a message widely that Suncheon county was no less than Naju in contribution to Goryeo dynasty. They purposed to lay emphasis on a fact that Suncheon was qualified enough to be given a preferential treatment on a par with Naju also. However such effort of Suncheon local community ended in a failure. Because there were no useful connections able to deliver and accomplish such public opinion of Suncheon local community in the central government any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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