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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對日사절 파견과 대응양상의 변화(1876~1885) -흠차대신 파견을 중심으로- = The Dispatches of Envoy to Japan by Joseon Dynasty and Changes in Response(1876~1885) -Focusing on Dispatch of Imperial Commissioner(欽差大臣)-
저자
박한민 (동국대학교 역사교과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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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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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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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0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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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876년 조선이 개항한 이후 일본 도쿄에 주차하는 공사를 파견하기 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파견한 사절을 검토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188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파견한 수신사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에 기초하여 사절의 구성과 활동을 개관하였다. 1885년에는 명칭을 흠차대신으로 바꾸어 徐相雨와 묄렌도르프를 일본으로 파견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파견한 사절은 모두 조일수호조규 제2관의 규정에 기초하고 있었다. 처음 사절을 파견할 때는 일본에서 조선으로 파견한 사절이나 공사에 대한 답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880년대 들어서부터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가운데, 점차 조약에 기초한 실무 교섭으로 사절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수신사가 가지고 간 국서와 전권위임장 등의 공문서에서는 기존의 외교 관계에서는 쓰지 않았던 용어가 등장하였다. ‘大君主’, ‘朕’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상대국과의 국격을 대등하게 맞추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또한 3차 수신사부터 기존 사절의 한 단계 급을 올려서 종2품에 있는 인물들을 정사로 선발하였는데, 이것은 흠차대신 파견까지 이어졌다. 갑신정변 발발 이후 일본으로 파견한 서상우 사절에는 처음으로 ‘欽差’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조선 정부에서 언제부터 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를 그 기원을 검토하였다. 조선에서는 서구 열강과의 조약 체결에서부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적 외교를 담당하는 외아문을 설치한 이후 일본과의 관계에도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양국 관계가 조약 체제로 개편된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다만 청국과의 외교 관계에서는 ‘흠차’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서상우는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일본정부와 세 가지 현안을 교섭하였다. 여기서는 안건별로 논의하게 된 맥락과 처리 과정을 검토하였으며, 사절 파견에서 실무적 성격이 강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더보기This article reviewed five envoys since the Joseon Dynasty opened her port in 1876, before establishing Joseon Legation in Tokyo. The Joseon government dispatched Susinsa(修信使) four times until 1882, which outlined the human composition and activities of envoys based on prior researches. In 1885, Seo Sang-woo(徐相雨) and Paul Georg von Möllendorff were sent to Japan by changing as an ‘imperial commissioner’ for the first time. All of the five missions to Japan were based on the Article 2nd of the Joseon-Japan treaty of Amity(朝日修好條規). At first, when Susinsa was sent from Joseon, it had the nature of a return visit to the envoys dispatched from Japan to Joseon. Since the 1880s, however, the nature of the envoys gradually changed due to treaty-based working-level negotiations with the U.S., Britain and other Western powers. In official documents, such as a credential and a commission of full powers taken by Susinsa, terms that were not used in traditional diplomatic relation began to emerge. The words ‘King(大君主)’ and ‘I(朕)’ were typical expressions. It was used to equalize national prestige with the other countries. In addition, the third Susinsa was selected as representative by one notch higher(從2品), and this led to the dispatch of the imperial commissioner to Japan. Seo who was dispatched to Japan after the outbreak of the Gapsin Coup in 1884, even used the name ‘imperial commissioner’ for the first time. When the Joseon government began to use such term, the origin of it was reviewed. Joseon began to use these terms from the signing of a treaty with Western power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Foreign Office(外衙門) in charge of modern diplomacy, Joseon applied the same to Japan, trying to show that the bilateral relationship reshuffled into a treaty system. However, Joseon government could not use the term ‘imperial commissioner’ in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Qing Dynasty. During his stay in Japan, Seo negotiated three pending issues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This article reviewed the context and process of handling the issues and confirmed that the working nature of the dispatch of envoy was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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