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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신찬태묘악장(新撰太廟樂章)」연구 - 텍스트 구성양상과 그 정치 · 문화적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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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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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58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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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왕조들이 『시경』을 도입하여 체질화시킨 역사는 매우 길다. 고구려의 태학(太學), 통일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의 성균관(成均館) 등 오늘날의 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들에서 『시경』은 정식 교과목으로 교육되었는데, 태학이 소수림왕 2년[AD 372]에 세워졌음을 감안하면, 이미 4세기 이전에『시경』은 도입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예종 11년[1116]의 「신제9실등가악장(新製九室登歌樂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시경』 텍스트가 국가 제사의 악장에 수용되었음을 문헌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예종 11년의「신제구실등가악장」은 공민왕 12년[1363]의 「환안9실신주태묘악장(還安九室神主太廟樂章)」· 공민왕 20년[1371]의「신찬태묘악장(新撰太廟樂章)」으로 이어지면서 고려조 길례(吉禮) 대사(大祀)에 속하던 태묘의 악장은 완성되었고, 그것이 조선조의 종묘제례악장으로 연결되었다. 특히 공민왕 16년[1367]의 「휘의공주혼전대향악장(徽懿公主魂殿大享樂章)」은 공민왕 20년의「태묘신찬악장」과 함께 전적으로『시경』 텍스트를 수용했다. 무엇보다 이 두 악장들에 수용된 『시경』 텍스트의 양적 비중이 절대적인데, 그것은 왕조별 전통문화의 단순한 선양을 지양하고 유교의 전파나 통치이념화와 함께 출현한 보편주의에 의지하려는 의식의 수준을 파악할만한 잣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위까지의 어려운 과정에서 갖가지 정치적 난국들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던 공민왕의 개인적 상황, 왕조 말기의 보수적 기득권세력과 그들의 이념적 바탕이었던 불교에 대한 개혁적 신흥세력과 그들의 이념적 바탕이었던 유교의 갈등으로부터 생겨난 소용돌이가 일종의 아노미 상태로 나타난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열성조(列聖朝)를 모신 태묘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권위를 통하여 왕권을 부양하는 일은 무엇보다 다급한 집권층의 과제였다.
『시경』텍스트 가운데 주송 26회 · 상송 13회 · 노송 6회 등 3송(三頌)이 45회로 가장 많고, 대아 26회 · 소아 16회 등 2아(二雅)가 42회로 그 다음을 차지한다 주나라 초기의 악장들이 주송으로서 주나라 왕실이 흥기했을 때의 가사들이고, 상송은 상나라를 세운 탕왕의 공을 기린 노래들로서 상나라의 주(紂)를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은 송나라로 하여금 상나라 탕왕과 후왕들의 제사를 모시게 했으며, 노송은 노나라의 주공 단(周公旦)과 그의 아들 백금(伯禽)의 공덕을 기린 것이다. 천하를 평정하고 예악을 정비한 주공의 공덕을 기려 천자의 음악으로 제사를 올리도록 했다. 특히 주공은 주나라의 예악을 정비했을 뿐 아니라 제도를 정리하여 『주례』를 만들었고, 공자는 주공을 숭앙해 마지않았다는 점에서 고려 공민왕을 둘러싸고 있던 유자계급으로서는 공자와 그가 편찬한 『시경』을 내세우는 것만큼 왕실의 권위를 세워주는 방법은 따로 없었다. 불교와 이민족인 원나라에 기대고 있던 기득권 세력을 일소하는 지름길이야말로 삼대의 문화를 집대성한 주공과 공자를 추앙하고, 그에 대한 오마주로서『시경』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악장 제작의 방법으로 거의 대부분의 어구들을『시경』에서 적출 · 조립함으로써 공자가 스스로 밝힌 ‘술이부작(述而不作)’을 통해 교조(敎祖)에 대한 오마주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점은 당대 지식사회의 집단의식과 정치적 지향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그들이자 조선조창업의 주역으로서 조선조 악장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은 고려와 조선이 우리 역사상 중세로 묶일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이었던 것이다.『시경』과 공자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강화된 왕권을 통해 국정을 안정시키고자 한 집권세력의 의도가 바로「신찬태묘악장」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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