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우천愚川 정칙鄭侙의 산수관山水觀과 산수시山水詩 연구 = The Landscape Poems of Jeongchik and His View of Landscape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3-92(30쪽)
KCI 피인용횟수
1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본고는 17세기 안동을 대표할 만한 처사적 문인, 우천愚川 정칙鄭?의 산수관山水觀과 산수시山水詩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연구되었다. 조선의 산수문학은 17세기 이후,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는 명청교체로 인해 중국의 산수를 선망하고 노래하던 종래의 인식이 조선의 산수를 진경眞境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두 번째는 양란을 겪은 뒤 지방사족들의 성장에 힘입어 지방문화의 가치가 재평가 되면서, 주변의 산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세 번째는 산수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내재한 ‘리理’를 미의 본질로 보려는 이학적 경향이 조선전기 문인들에게서 강했다면, 후기로 내려오면 산수 자체를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를 시문으로 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져 갔다.
정칙은 그러한 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산수관은 각각의 산수가 드러내는 미적 개성을 중시하고, 어떤 이념적 규범화에 기반하여 승경勝景의 우열과 고하를 논하는 태도에 반대하였다. 이는 만년에 친밀한 교유를 나누었던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와 이루어진 일련의 논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응조는 퇴계 성리학을 계승한 전통적인 이학가적 면모를 지닌 규범적 미의식의 소유자였다. 반면 정칙은 외삼촌인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 형제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당시로서는 매우 개명적인 세계관을 지닌 문인적 기질이 우세한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기질과 세계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양인의 산수관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정칙은 승경의 개성을 중시하는 산수관에 기초하여 자신의 은둔처(우천)를 선정하고 그곳의 승경을 찬미하는 한시를 지었을 뿐 아니라 뜻을 함께 하는 당시 향촌 지식인들과 안동 인근의 승경을 유람하고 그 경관의 미적 특질을 즐겨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정칙의 이러한 산수관과 산수시 창작은 조선 산수문화사에서 선구적 의의가 있다. 왜냐면 중앙문단을 주도하고 있던 경화세족 자제들이 동유東遊(금강산 유람) 열기에 따라 다양한 산수관과 산수평을 쏟아내면서 본격적으로 진경시眞境詩 창작에 참여하기 이전에 정칙이 한발 앞서 이러한 의미있는 심미審美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This study aims to explore Wucheon(his pseudonym) Jeongchik’s view of landscape and the characteristics of his landscape poems. He was a representative of the literati of Andong in the 17th century when landscape literature confronted huge changes and revisions of forms. Under the Ming dynasty, Joseon’s literati had often yearned for Chinese scenic landscapes and created poems about them. However, following the MingChing transition, literati began to recognize Joseon’s landscape as their real object of literature. Also, with the outbreak of two wars local aristocrats gained political powers and consequently, the local culture was reappraised and their local scenic spots attracted more attention.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literati had scientific views on landscape. Instead of perceiving the landscapes as they were, they analyzed and researched the order of nature since they thought this order was the essence of beauty. However, these kinds of perspectives completely chan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the literati realized the landscape itself was the object of beauty and began to make efforts to compose poems for it.
Jeongchik demonstrat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late Joseon literature. He thought aesthetic identity which each landscape retain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He was opposed to the attitude to grade or rank the beautiful landscapes based on certain ideological patterns. This can be proved by a series of arguments he had with Haksa Kimeungjo who was one of his best friends in his later years. Kimeungjo succeeded to Toegye’s academic achievements and his aesthetic viewpoint was based on scientific ideological models. Meanwhile, Jeongchik was inspired by his uncle, Gyeongjeong Yiminseong and his brother, and had an artistic and cultivated temperament with a very civilized view of the world. Kimeungjo and Jeongchik had thoroughly different perspectives and thoughts on the landscape due to their difference of temperaments and views of world.
Jeongchik selected a scenic spot as his retreat and composed poems praising the landscapes around the spot. He frequently made excursions with his friends and local scholars to the beautiful landscapes near Andong and produced poetic writings based on their aesthetic properties.
The landscape poems of Jeongchik and his view of landscape were influential on the literature study of Joseon because he started to create his literature based on the appreciation of the local landscapes. His writing set a precedent before the children of Yangban(aristocrats) in Seoul, who lead a literature trend in Joseon, offered various views of the landscape and reviews on them.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8-0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 Studies Adancement Center -> The Korean Studies Institute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5 | 0.65 | 0.6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6 | 0.62 | 1.324 | 0.1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