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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천도교 소년운동의 이론과 실천 = Arguments and Practices of the Children Support Movement of the Cheon’do-gyo Religious Order in the 1920s
저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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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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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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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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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80(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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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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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mined in this article, is the Children Support Movement of the Cheon’do-gyo Religious Order. It was a movement that pursued Democracy and Nationalism at the same time, in terms of its arguments, the structure of its organization and also its practices. The movement virtually led all the children support campaigns in the early half of the 1920s.
The efforts of the Cheon’do-gyo order’s Children support movement of the 1920s led to some noticeable achievements, such as the formation of the Cheon’do-gyo order Youth Community in 1921, the proclamation of the Children’s day in 1922, and the publication of the magazine 『Children』 in 1923 for the first time. Leaders of the Cheon’do-gyo Child support movement argued that children should be raised as children in a free and equitable environment with a democratic culture which would also have respect for the children’s due rights inside families, schools and not to mention the society, so that they could grow up and lead the foundation of the new Korea. For the sake of the future of the Korean people, they argued that instead of a colonial education that oppressively demanded obedience and order, a free, equal and democratic culture was required for the education of the children.
With the proclamation of the Children’s day and the publication of the 『Children』 magazine, the Cheon’do-gyo Child support movement earned the support and respect of the entire society and also the Nationalist movement. But after the mid-1920s, the Nationalist movement suffered internal schisms, diverged into many branches due to their own ideological differences, and the Cheon’do-gyo Child support movement suffered heavily in the wake of all that. And as a new branch inside the Cheon’do-gyo order pursued the promotion of the entire order into a new independent political force, the order withdrew from the Child support movement, and lost their influence in the matter.
본 연구의 목적은 천도교 소년운동이 이론ㆍ조직ㆍ실천의 세 측면에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한 운동이었기에 1920년대 전반기 소년운동을 선도하며 전성기를 맞게 된 것임을 논증하는 데 있다.
1920년대 천도교 소년운동은 1921년 천도교소년회의 결성과 1922년 어린이날의 제정, 1923년 『어린이』 잡지의 창간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년운동계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천도교 소년운동 지도자들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의 아동 인권 존중의 민주주의적 문화를 뿌리 내려 자유롭고 평등한 환경 속에서 소년을 소년답게 키워 장차 신조선 건설에 앞장 설 든든한 동량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억압과 규율과 복종을 강요하는 식민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문화가 넘치는 소년운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소년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도교 소년운동의 이론이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 잡지 발간 등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천도교 소년운동은 사회와 민족운동 진영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민족운동 진영이 이념적 분화를 하며 합종연횡하는 시대를 맞아 천도교 소년운동도 차츰 주도권이 약화되는 길을 걷는 가운데, 천도교만의 독자정치세력화를 시도한 천도교 신파의 방향 전환에 따라 사실상 소년운동계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러한 천도교 소년운동의 성과로는 첫째, 소년운동의 민족운동화를 들 수 있다. 1920년대 천도교가 민족 운동 진영의 주류로 활약했듯이, 천도교소년회는 소년운동을 농민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 등과 함께 민족운동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조선총독부 당국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100만매의 전단이 뿌려지면서 50만 명이 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할 수 있도록 허용된 ‘민족적’ 행사는 오직 어린이날에만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년운동이 민족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식민 통치의 밖, 즉 민족이라는 자장 안에서 민주주의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식민통치의 현실은 일본 제국주의 권력, 즉 조선총독부의 독재와 전제에 짓눌리며 살아야 하는 비극이었다.
하지만 민족과 민족 운동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선인들은 늘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꿨다. 그러므로, 민족의 자주독립은 민족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요, 그 길이 곧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가 빼앗아간 개인과 민족의 민주주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도교 소년운동은 천도교소년회의 조직과 운영, 『어린이』의 발간을 통해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문화를 계몽하고 또한 직접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민족 독립의 희망과 함께 민주주의 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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