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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丁若鏞)의 기자(箕子) 인식(認識) - 고법(古法)탐구와의 연동(連動)을 중심으로 - = A Study about the Recognition on Kija(箕子) by Jeong Yak-yong(丁若鏞) - Focusing on the changes that caused by exploration on Old Law(古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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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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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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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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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69(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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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기자 인식은 비균질적이면서도 전환적으로 변화했다. 또한 보편적 유교문화의 시원으로서 기자를 정위한다는 기조를 공유했으되, 기자로부터 전래된 보편문화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당시의 유자들과 상이한 견해를 가졌다. 이에 본고는 다산의 기자 인식이 古法에 대한 독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양자를 계기적으로 논증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사료적 가치에 있어 후대의 역사서보다 經書를 우선했다는 점, 경서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유교의 보편적 전장을 궁구했다는 점, 또한 이것이 기자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준거로 활용되었다는 점 등은 다산의 기자 인식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다산의 기자 인식은 유배기 전후로 크게 달랐는데, 이는 고법과 기자에 대한 경전적 해명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먼저 사환기까지의 다산은 기자의 동래와 그로 인한 행적 전반에 대한 경학적 전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단군이 한반도를 다스렸고 ‘朝鮮’이라는 명칭도 이때부터 있어왔다고 보았던 한편으로, 기자의 동래 나아가 평양에 도읍을 세웠다는 것에는 강한 의문을 표했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기자정전’으로 운위되던 평양의 격자형 유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지의 구획는 ‘井’자가 아닌 ‘田’자였는데, 이와 같은 형태는 『맹자』의 정전에 대한 경문과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다산이 ‘기자정전’을 인정하지 않았던, 대신 이를 당나라의 이세적이 운영했던 둔전의 유지로 추정케 했던 경학적 근거였다.
그러던 다산에게 강진 유배기는 유학의 보편적 전장을 본격적으로 궁구할 시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산은 『周易』의 明夷卦를 역사적으로 재해석하여, 기자 동래에 대한 경전적 근거로 삼았다. 또한 『주역』의 坤卦, 『尙書』의 洪範九疇와 六鄕制, 『周禮』의 營國원리 등을 재해석했다. 그리고 ‘井’자가 토지제도에서부터 도성[읍성]건설, 나아가 통치 이념에 이르는 삼대 전장에서의 보편적 원리였음을 추론했다.
이와 같은 고법 독법 하에서 다산은 기자의 흔적을 평양의 유적 가운데에서 해명했다. 그런데 그가 주목한 것은 평양성 밖의 이른바 ‘기자정전’이 아닌 평양성 내부의 격자형 유지였다. 동래한 기자가 고법에 의거해 평양성을 조영했으니, 내부에 남아 있는 ‘井’자 형태의 공간 구조가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로써 다산은 고대의 한반도를 유학의 보편적 전장이 시행된 시공으로, 그와 같은 경학적·역사적 추론에 대한 실증적 근거로서 평양성을 위치시켰다.
이처럼 다산에게는 보편적 전장의 해명이라는 학술적 목표가 일관되게 저류하고 있었다. 특히 유배기 이후로는 경전의 재해석을 통해 고법에 대한 기왕의 독법을 조정했으며, 그 논점을 통치체제의 차원으로 확대했다. 다산의 이러한 학술적 경과 속에서 고법은 기자와의 주요한 교점이 되었다. 그리고 고법 독법의 변화에 근거해 기자에 대한 인식 또한 연동했고, 이 과정에서 기자는 고대 한반도에서의 문명사적 실체로서 자리매김했다.
Dasan(茶山) Jeong Yak-yong(丁若鏞)'s recognition on Kija(箕子) was inhomogeneous and conversely changed. Therefore, this paper aims to empirically argue Dasan's perception on Kija under the connection with the process of changing his view about Old Law(古法).
The fact that the historical value of the Confucian scriptures was prioritized over the later historical books, that the universal system of Confucianism was explained based on the interpretation of Confucian scriptures, and that it was used as a criterion for judging the historicality of Kija were characteristics that were continuously confirmed in Dasan's perception on Kija.
Nevertheless, Dasan's perception on Kija was significantly different between before and after the exile period, because Dasan's explanation based on Confucian scriptures for Old Law and Kija was changed.
Dasan before exile was unable to provide evidence in the Confucian scriptures for Kija's migration to the east and the overall course of action related thereto. In addition, Pyongyang(平壤)'s grid-shaped historical site, so-called ‘Kija's Jeong-jeon(井田)’, was not recognized because it did not conform to the explanation of 『Mencius(孟子)』 about Jeong-jeon.
Dasan was exiled by Gangjin(康津), and during that period, he studied the universal system delivered in Confucian scriptures in earnest. In this process, Dasan historically reinterpreted Ming-Yi Hexagram(明夷卦) in 『I-Ching(周易)』, and used it as a scriptural basis for Kija's migration to the east. In addition, Dasan reinterpreted Kun Hexagram(坤卦) in 『I-Ching(周易)』, the Nine Category of the Great Rule(洪範九疇) in 『Shangshu(尙書)』, Hyangsu- System(鄕遂制) in 『Zhou-li(周禮)』 and 『Shangshu』, and argued that the form of ‘Jeong(井)’ was the universal principle of the Confucian ruling system.
Under this interpretation of Old Law, Dasan explained the traces of Kija among Pyongyang's ruins. However, what he paid attention to was not the so-called ‘Kija's Jeong-jeon’, but the maintenance of the grid inside Pyongyang Fortress. He understood that Kija built Pyongyang Fortress in accordance with the old law, and regarded the remaining shape of Jeong as its evidence. Overall, Dasan evaluated the ancient Korean Peninsula as a space where the universal Confucian system was implemented. In addition, he positioned the grid-shaped historical site inside Pyongyang Fortress as an empirical basis for his Confucian scriptural and historical 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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