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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계율 이해 연구 = A Study on Understanding of Vinaya Pitaka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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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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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57(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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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불교승가가 시작되면서 성립된 계율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불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게 된다. 인도에서 처음 계율이 만들어지던 당시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 인도와는 다른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화차이로 인해 본래 인도의 계율과는 다른 새로운 계율을 만들어 내고 창출하였다. 본래 인도불교에서 계와 율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단어이었다. 초기불교에서는 계와 율을 분명하게 나누어 설명한다. 계는 주관적인 개인의 결의로 범계(犯戒)에 대한 벌칙이 없으며, 세간의 윤리도덕에 해당하고 자발적인 면이강조되고 있다. 율은 상가라는 공동체의 규칙으로 범계에 대한 경중(輕重)의 벌칙을 받으며, 세간의 법률에 해당하고 타율적인 규범이다. 중국에서는 계와 율을 나누지 않고 계율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계율은 경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용어이다. 계율이 의미하는 말은 시라의 의미보다는 상가의 규칙, 즉 바라제목차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한국과 일본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범망경』이 번역되어 유통된 후에는 성문계보다는 범망계가 중국불교에서 우위를 차지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천태지의와 현수법장등에 의해 계율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불교수용과 더불어 계율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에서는 계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원광과 자장에 의해 기틀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성문계인 『사분율』을 중심으로, 삼국이 통일된 후에는 대승의 범망보살계가 중점적으로 연구되었다. 그 중심에 원효가 있다. 원효의 계율관은 범망계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범망계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계율로서 지범(持犯)의 판단기준은 표면적인 행위보다는 중생제도라는 내면적 동기에 두어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계율은 지눌과 지공에 의해 전승되었다. 지눌의 『권수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은 청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지공은 무생계(無生戒)로서 사부대중에게 수계를 하였는데, 그 영향력은 매우커서 술과 고기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를 끊었고, 무당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를 멀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가운데서도 기화 휴정, 긍선, 등이 계율정신을 강조하였으며 근세 학명 동산에 의해서 전승되었다. 일본불교의 계율의 기원은 백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계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백제불교는 일본불교의 계율 수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도광은 도선의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를 가지고 귀국하여 그 해에 『의사분율초찬록문依四分律抄撰錄文』1권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에서 일본에 최초로 율종을 전래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까지도 구족계의식이 여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광은 『사분율』에 의거해 일본의 비구 비구니들을 규율하였다고 한다. 이로서 일본의 불교계는 겨우 본격적인 계율을 지향하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천평승보(天平勝寶) 7년(755)에 이르러 당승(唐僧) 감진(鑑眞)이 동대사에 계단을 설치하고 구족계와 보살계를 전계하면서부터 일본불교도들은 중요한 생활규범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가정(嘉禎) 2년(1236) 동대사에서 자서수계(自誓受戒)를 한 각성(覺盛, 1194~1249)과 예존(叡尊, 1201~1290) 등에 의해 율종이 부흥되었다.
더보기Sila Vinaya, which was established along with the start of Buddhist Sangha, experienced great and small changes in the acceptance procedure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Their periodic background, culture, political, social, cultural climate different from India’s created their own novel Sila Vinaya. Originally, Sila and Vinaya had been used as different concepts. The early Buddhism divided up Sila and Vinaya distinctively. Sila is a subjective resolution of individuals, and has no penalties of violation. It corresponds to morals and ethics of the world, and puts emphasis on spontaneity. Vinaya is a regulation of monastic community, and has penalty of gravity. It corresponds to a law of the world and heteronomous. China didn’t divide up Sila and Vinaya and used them together. The word Sila Vinaya was created in the process of scripture translation. It was used to refer to regulations of monastic community, Patimokkha, and accepted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ffecting them profoundly. Since Brahamajala Sutra was translated and distributed, Brahamajala Sila held a dominent position over Shravaka Sila and was studied actively. Especially, Cheontae Jiui and Hyeonsu Beopjang interpreted and understood Sila and Vinaya freshly. Korea started to understand Sila and Vinaya as accepting Buddhism. Silla did active research on Sila Vinaya. Won - gwang and Ja - jang built its foundation. Before unified Silla, Dharmagupta Vinaya was a center of the research; and after unified Silla, Brahamajala Bodhisattva Sila took the position. Won - hyo was a key figure of the research. His Sila Vinaya concept focused on Brahamajala Sila. It was applied to both monks and lay people, and its criteria was internal motive of liberation of sentient beings. In the Koryo Dynasty, Sila Vinaya was passed down by Ji - nul and Ji - gong. Ji - nul’s Gwonsujeonghyegyeolsamun and Gyechosimhaginmun were influenced by Cheonggyu. Ji - gong gave commandments to the fourfold assembly by Musaenggye. It had a profound impact onf people, making them quit enjoying alcohol and meat and avoid shamans. In Joseon Dynasty, despite its anti - Buddhism policy, Gi - hwa, Hyu - jeong and Geung - seon focused on Sila Vinaya spirit, and it was handed down by Hak - myeong and Don - san in modern times. Sila Vinaya of Japanese Buddhism was based on Baekje. Baekje Buddhism, Sila Vinaya - centered, played an absolute role to acceptance of Sila Vinaya in Japanese Buddhism. Do - gwang obtained Do - seon’s Sbunyulsanbeonboguelhaengsacho and published the first volume of Uisabunyulechochanrokmun, to become the first initiator of Yule-jong to Japan in China. Because Upasampada ritual was not legal until that time, he was said to regulate Japanese Bhikkhu and Bhikkhuni under Dharmagupta Vinaya. This managed to create foundation aiming at real Sila Vinaya in Japanese Buddhism. Ever since Kim - jin, a Tanng Dynasty monk, installed a stairway in Dongdaesa and spread Upasampada sila and Bodhisattva sila in the seventh year of Cheonpyeongseungbo(755), Japanese Buddhists were handed down major living criteria. Yule - jong was reestablished by Gak - seong(覺盛, 1194~1249) who received Buddha’s precepts on his own in Dongdaesa in the second year of Ga - jeong(1236) and Ye - jon(叡尊, 1201~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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