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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求法僧의 숙박시설 -円仁의 『入唐求法巡禮行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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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11
등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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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31-25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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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和 5년(838) ‘遣唐請益僧’의 신분으로 承和遣唐使와 함께 입당한 엔닌은 10여 년에 이르는 입당기간 중의 견문을 『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하였다.
그 중 엔닌이 당에서 구법순례의 여행기간 동안 머물며 숙식을 해결한 여러시설에 관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대 구법승의 숙박시설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견당사와 함께 揚州에 도착한 엔닌은 산동반도를 거쳐 五臺山의 聖跡을 순례하고 長安에 이르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하는 여정을 통해 다양한 시설에서 宿食을 제공받았다.
먼저 견당사라는 일본의 공식사절단의 일원으로 입당하였으므로 엔닌은 기본적으로는 당대의 외국 사절이나 관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官衙나 驛館 등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양주의 宜陵館이나 登州의 勾當新羅所를 통해 赤山法華院에 머문 것은 엔닌이 견당사의 일원으로 공식적으로 입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닌이 당에서 구법순례를 하는 동안 숙박지로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寺院이다. 이것은 물론 엔닌이 승려의 신분으로 순례 중이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당 대의 사원은 僧俗뿐만 아니라 官人이나 官客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었다. 이는 엔닌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貞元5년(789) 州府의 寺院과 道觀을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것을 금하는 勅이 반포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당대의 사원이 숙박시설로서 활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귀국하는 견당사일행과 헤어져 구법승이라는 개인적 신분으로 당에 체류하면서 엔닌은 普通院이나 일반의 家宅, 그리고 店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 중 普通院은 오대산순례를 위한 향해 가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이용한 시설로 오대산에 이르는 순례로를 따라 대체로 20∼30里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당시 하루 평균 여행할 수 있는 거리가 50里 정도였던 것으로 추산되므로 보통원은 반나절 정도의 여행거리마다 설치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엔닌은 지나는 마을마다 흔히 佛心이 있는 민가에서 승려인 엔닌에게 공양과 숙박을 제공한 것이 대부분이고, 물론 불심이 없어 엔닌에게 불친절한 대접을 했던 민가도 있었지만 家宅은 여행객을 위한 촌락내의 숙박시설로 개인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당대에는 店이 창고, 상점, 여관 등 복합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소규모의 鄕村이나 草市의 店을 지나면서 엔닌 역시 이것을 숙박시설로 이용하였다.
이렇게 당대에 불법을 구하러 입당한 승려들은 공적 사절이 이용할 수 있는 驛館이나 寺院에서 숙식을 제공받기도 하고, 구법승이라는 개인적 신분으로 普通院이나 家宅, 店 등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며 聖跡를 순례하였다.
On the fifth year of Seunhwa (838), Ennine (Japanese monk) who joined into Buddhism with Japanese officials was sent to Dang state to seek Buddhistic truth. As a result, Ennine, for 10 years, had compiled personal experience & observation known as [Pilgrimage itinerary of
seeking a truth: Ipdangkubeop Sullagi] into a book to hand the knowledge down to us. Among them, we can find a clue where the seeker monks of Dang dynasty lodged for the training period.
Ennine who arrived at Yangju with Geondangsa through Shandung peninsular has been well treated in various lodges throughout voyage whole from Sungjeok (Buddhistic relic site) to Jangan. Above all, he as a status of Japanese officials named Geondangsa basically received a
courtesy in a facility like Gwan-A (a government office) or Yeokkwan(a lodge for travelers in middle age). He as one of the Geondangsa entered and stayed in the facility named Jeoksan
Buphwawon by the solicitude of Silla-so(a Silla’ government office in Dang state of China) located in Deungju and Euirung kwan of Yangju.
But a favorite lodge where he stayed was temple. Main reason of this is due to two factors. One is that he was a seeker monk who is on pilgrimage, the other is that all temples of post-Dang age was widely opened to Buddhist monks and all the public as well. The fact that the
contemporary temple was available for all the people is can be proved through Ennine’s personal record on the one hand, and confirmed by the channel of a decree that left by travelers’testimony in temple & Dokwan (drill hall of Daoism).
Thenceforth, Ennnine who said goodbye to Geondangsa colleagues returning to Japan stayed to lodge as a common seeker in a house of ordinary people, Botongwon, and store. Among them, Botongwon known as a common resting facility was located in every 7 miles. As we estimate on the fact that 12.5 miles was good enough for one day travel, Botongwon must have been in every half-day travel distance.
And common houses that especially had Buddhistic belief welcomed and treated him with warm heart & hospitality as an expression of religious tribute. In spite of some exceptional homes that responded with burdensome, most houses was generally and widely opened for public lodging of travelers.
Lastly, as the contemporary stores had multi-function like storage, sales facility, and inn, so Ennnine used to visit for lodging. Likewise, most monks who entered Dang state for seeking Buddhism was treated well in common temple, on which many seekers monks could make a
pilgrimage using Botongwon, civilian’s house, and st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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