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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시대와 주희의 환상 - 유학 현대화의 단초 모색 - = The Age of Neo-confucianism and Zhu Xi’s fantastic Idea - Searching for a Clue of Modernization of Neo-Confucianism -
저자
김경수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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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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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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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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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3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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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twenty-first century, the impact of Confucianism has decreased. It appears that Confucianism would be hard to retrieve its honor. Zhu Xi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transition from Confucianism to Neo-Confucianism. In this paper, I analyze the five fundamental intentions of his works and the ideal type of Neo-Confucianism rules he designed.
He considered the manners of Confucianism collapsing. At that time, manners of Taoism and Buddism were popular among people, and this trend was so prevalent that even illustrious officials didn’t take complex manners from Confucianism. Thus, Zhu Xi published Garye(Family Rituals) and minimized the manners of Confucianism. This may be the only way he can bring original fans back to the Confucianism. He also has written Geunsarok(Jin-si Lu) so that he made it possible for beginners and countryside scholars to find the book worth reading as an introduction to Neo-Confucianism. He let people follow the order he made in reading, and he published So Hak(The minor Learning) in order that he had children start to learn only from Confucianism. On the other hand, while describing important points of Dae Hak(Great Learning) and Chung yong (The Doctrine of the Mean), he completed the theory of self cultivation not only as a goal of Neo-Confucianism and but also as steps to reach its goal. He regarded himself as the master but this self-conceited mind brought him hatred from political rivals and the emperor. His dream to unite the world into one way is theoretically achieved but it is actually made by the unreasonable and fabricated way. However, he as a great thinker was the only person who completed the comprehensive system of Neo-Confucianism, and his thought has been widespread as the mainstream for the past 700 years after him.
It is prerequisite for Confucianism to decide who does what from other religions and thoughts. Confucianism can function as a guideline for people in living in society. Furthermore, modeling the Confucian leadership would be helpful for leaders of society. It is necessary to set the standard of manners in minimum, but, it is impossible to force people to follow the manners. In conclusion, Confucianism needs to design the models of self cultivation, and to propagate some effective programs like other religions to the society.
20세기에 들면서 유학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제 유학은 더 이상 옛날의 전성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학이 성리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朱熹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여기서는 그 중에서 성리학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저술의 편찬의도를 분석하여 그가 구상하였던 성리학적 질서의 이상세계를 분석하였다.
그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부분이 바로 유교적 禮法의 붕괴였다. 당시는 도교와 불교의 예법제도가 유행하여 사대부들도 유학의 복잡한 禮制를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는 『家禮』를 편찬하여 유학의 예를 대폭 간소화했다. 이런 방법만이 많은 사람을 유교의 예법으로 다시 돌이키는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近思錄』을 편찬하여 성리학의 범위를 한정하면서, 이 책을 통하여 성리학에 입문하는 초학자들부터 시골의 선비들까지 학문에 입문하는 도구로 삼도록 하였다. 그는 독서의 순서를 정하였고, 『小學』을 편찬하여 어린아이 때부터 철저히 유교적인 학습에만 젖어들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 그는 성리학의 목표와 그에 이르는 단계 및 학문방법론으로서의 수양론도 완성하였다. 바로 『大學』과 『中庸』을 중시하여 그 요점을 설명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스스로 당시에 있어 도통을 이어받은 ‘스승’으로 자임하였으나, 이런 강한 자부심으로 인하여 그는 政敵들의 미움을 사고 황제의 기피대상이 되어 불행하고 쓸쓸한 만년과 임종을 맞이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 꿰려고 한 그의 꿈은 이론적 틀로서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틀의 많은 부분들은 억지와 조작으로 된 것들이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사상가로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종합적 시스템을 완성한 인물이었고, 그의 사상은 이후 7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의 주류로서 작동해왔다.
오늘날의 유학이 일정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나 사상과의 철저한 역할분담을 전제로 해야 한다. 유학은 교양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지침이나,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지도자를 위한 유학적 리더십의 모형화에 힘을 기우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유교적 예제를 따르는 사람을 위해서 가장 간소한 예법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는 있겠지만, 유교적 예교의 강요는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유교도 물질문명의 시대에 개인의 성찰을 위한 수양법을 보다 모형화해서,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보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17-01-23 | 통합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2-2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한국문화 -> 퇴계학과 유교문화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8-2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퇴계학과 학국문화 -> 퇴계학과 한국문화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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