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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유신(維新)의 정치학 -개념의 치환과 「일본유신 30년사」? = The Politics of Yu-shin in the Daehan Empire Period -Changes in the Concept and Ilbon Yu-shin 30 nyun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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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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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교체기를 맞이하거나 국정개혁을 도모하고자 한 조선의 역대 왕들은 ‘유신(維新)’을 기치로 내걸고 새로운 정국의 시작을 천명했다. 전통적 유신 개념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특징적이었다. 첫째, 유신은 현재 이해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결정적으로 국가통치이념 및 제도와 관계되는 개념이었다. 둘째, 순환적 역사관 속에서 정치개혁은 이상적인 ‘구(舊)’의 상태로 거듭나게 하는 의미로 ‘신(新)’을 지향하는 것이었으며, ‘복고’와 ‘혁신’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었다. 셋째, 그러한 역사관 속에서 왕조 교체 또한 순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 개념은 개항기 이후 ‘유신’의 모델로서 ‘메이지유신’이 거론되면서 균열되기 시작했다. 순환적 역사관의 신구 관념에서 탈각한 ‘신’은 ‘구’를잘라 버리고, 진보주의와 결합하여 문명개화를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전통적 유신 개념을 이루는 도덕적 측면과 제도적 측면도 분리되었다. 그러한 균열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 1906년 『황성신문』에서 번역·연재한 「일본유신 30년사(日本維新三十年史)」이다. 그런데 이 번역의 원저인 일본서 「메이지 30년사(明治三十年史)」는 황국사관, 일본주의, 진보주의 입장에서 그 시발점으로서 메이지유신을 위치시키고, 그 결실로서 일본이 문명개화·근대화되었다는 인식에서 기술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황성신문』의 「일본유신 30년사」는 일본서에서 제시한 것들을 유신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대한제국 국가 경영과 진보를 위하여 학술과 사상으로서 학습해야 할 대상으로 소개함으로써 유신 개념을 해체·왜곡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유신은 그 궁극 대상인 국가정치와 차단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폐기되었던 도덕적 측면은 ‘국민사상’으로서 ‘충군애국’으로 부활하였다. 대한제국의 유신 개념은 그 안에 메이지유신이라는 문명개화의 지표가 침투하여 터 잡음으로써 국가정치의 정통성과도 근본적 정치개혁이라는 진보성과도 고리가 단절되어, 국민·도덕·교육·애국 개념들이 만들어 낸 폐쇄회로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더보기Kings of Chosun who represented a dynastic transition, or who attempted reforms, often decreed a new beginning in state affairs under the slogan of 維新( Yu-shin). Currently, the word is generally understood as ‘reform’, ‘innovation’, or ‘renovation’, indicating the renewal of outdated policies, but the traditional concept of ‘ Yu-shin’ did not necessarily imply a renewal. Yu-shin was grounded in the legitimacy of the royal succession, seeking to correct any deviations in ‘natural law’, ‘morality’, and ‘customs’ from the ‘original state’ represented by the ideals of the Yo-Sun era (堯舜時代). Thus, the word implied both ‘restoration’ and ‘renovation’ in its traditional context. This traditional concept of ‘ Yu-shin’ was impacted by the open-door policies resulting from Chosun academics learning about the Japanese Meiji Yu-shin (or Meiji Restoration), when the Japanese officials of the Japan-Korea Legation described the reforms of King Go-Jong as being Yu-shin modelled on the Meiji Yu-shin. Thus, a schism arose when the Japanese historical concept of ‘Meiji Yu-shin’ influenced Chosun’s traditional concept of ‘ Yu-shin’. The catalyst for this schism was 日本維新三 十年史, which was translated and serialized by the newspaper Hwang-Sung in 1906. This series was significant for introducing the Daehan Empire to the accomplishments of Japanese modernization in the 30 years since the Meiji Restoration, but the publication of 明治三十年史presented the biased perspective of Kokoku Shikan (a nationalistic view of history centered on the Emperor), together with Japanism, and a progressivism rooted in the Meiji Restoration. These factors contributed greatly to the disintegration and distortion of the concept of Yu-shin in Daehan Empire. In response to this, Hwang-Sung altered the original introduction to its translated series 日本維新三十年史to state that the Japanese Meiji Yu-shin and the subsequent establishment of national sentiment and modernization represented a natural process of ‘ Yu-shin’, and that this process formed an essential topic of scholarship to drive political changes and progress in the Daehan Empire. Thus, ‘ Yu-shin’ was coupled with the concept of ‘progres- sivism’, with priority in scholarship, and then with ideology, so that it was decoupled from its original target, ‘state’, and associated instead with less important targets. Within the concept of ‘ Yu-shin’ in the Daehan Empire, the foreign concept of Meiji Yu-shin became established. This functioned primarily as an index for the progress of civilization, decoupling Yu-shin’s original connection to the legitimacy of national policies in which progressivism represented fundamental political reform. The altered form of the concept was then recycled within a closed circuit, affecting the values of scholarship, ideology, patriotism, an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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