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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천도교인 金亨俊(金午星)의 활동과 사상변화 = Kim Hyeong-jun's Activities and Ideological Changes in Japanese Colonial Era
저자
박민영 (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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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9-17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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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focuses on Kim Hyeong-joon's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Kim Hyeong-joon was born in 1908 in Yongcheon, Pyeonganbuk-do. He was born in a Chondogyo family, and as his family was poor, he attained knowledge through Chondogyo meetings and readings instead of attending the regular school. His activities began in the mid-1920s, and they were mostly related to rural movements and Chondogyo activities. In particular, Kim participated in the organization of local rural groups and farmers' enlightenment movement, while concentrating on propagation and education of Chondogyo as a position holder in the religion. He was engaged in both religious and social activities, but he was more actively involved with activities targeting the general public such as farmers. However, he received police investigation in relation to Seoseonburi Farm case and went to Japan for study around that time. Kim Hyeong-joon entered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at Nihon University and began his regular studies. He also regularly attended the Chondogyo Jongniwon(administrative office) in Tokyo and conducted both Chongdogyo activities and academic studies.
Kim’s activities were similar to the 1920's after he returned to Korea in the early 1930s, serving as a theorist of Chondogyo and a youth activist. On the other hand, he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of peasants and workers and wrote many articles based on Nietzsche philosophy in the Farmers to enlighten the peasants. However, Kim 's involvement in Chondogyo was discontinued in the mid-1930s, which is considered to have been influenced by changes in the Chondogyo Youth Party's activities that started to focus on the religion instead of social participation. In the end, he moved his activity area to philosophy which he had majored in the university and emerged as an important figure in critical literary.
However, despite moving the area of activities, Kim Hyeong-joon continued to show interest in the public, especially the youths, farmers and workers. He was a major commentator on the ‘New Generation Theory’, and dealt with youth issues in a variety of ways. In this way, Kim Hyeong-joon pursued the realization of a theory by concentrating on the public and society as in the past when he had been involved with Yongcheon Peasant Movement and the Chondogyo Youth Group.
이 글은 천도교의 민족운동가 金亨俊의 1920~30년대의 천도교 관련 행적을 중심으로 다룬 논문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형준의 성장 과정과 사회 활동 초기에 천도교가 강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찰하였다. 김형준은 가난한 천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천도교의 교육을 받으며 지식을 쌓았고, 용천 지역 농민운동을 비롯한 실천 행동에 주력하였다. 비록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나, 천도교는 그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둘째, 김형준이 천도교단 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된 까닭을 밝혔다. 김형준이 종교를 내면화하여 이것을 실천 방식으로 확립한 것은 일본 동경 유학 시기였다. 그는 젊은 천도교 신파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갖춘 인재였고, 여러 활동들을 통해 천도교 전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교리를 내면화하고 활동력을 갖춘 김형준은 귀국 후 천도교청년당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천도교 중앙 조직에서 청년의 가치를 강조하며 다양한 직책을 맡았음이 확인되었다.
셋째, 1930년대 중반 천도교단의 활동 방침이 바뀌는 과정에서 천도교 지식인이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고찰하였다. 김형준은 귀국 후 천도교청년당 중앙 조직에서 청년의 가치에 주목하며 그들의 육성에 주력했으나, 건강 문제와 더불어 천도교단의 활동 방향 변화가 맞물리면서 기존 활동 유지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김형준은 천도교와 점차 거리를 두며 완만하게 철학 쪽으로 이동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다만 천도교에 집중하던 시기 내면화했던 많은 것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글은 천도교 신파 세력이 강했던 지역 출신의 어느 천도교인이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천도교리에 깊이 심취한 연유와, 1934년 천도교의 민족운동 노선 변화에 대한 대처 방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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