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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代 杭州의 美術品 市場과 新安船의 古器物 = The Yuan Art Market in Hangzhou and Antique Artworks Discovered from the Sinan Shipwreck
저자
김영미 (국립중앙박물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6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609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9-108(20쪽)
KCI 피인용횟수
1
제공처
소장기관
This paper focuses on antiques in order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ceramic wares discovered in the Sinan shipwreck. First, I selected antiques among the findings from Sinan shipwreck, then attempted to understand the context in which these objects had been loaded, as well as the paths used for transporting them, with reference to the trends of the Hangzhou art market of Yuan (元, 1271~1368) Dynasty China, and to observe how Japanese demand for Chinese ceramics reflected the antiquities found in the Sinan.
In order to investigate the ceramics and other antiquities carried in the Sinan vessel, this paper also examine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ancient art market, customers’ tastes and their selections, and the distribution channels. The results and significance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of all, most of the ancient ceramic items found in the Sinan shipwreck were in small quantities of just one or two pieces each. They are thought to have been purchased at the art market in Hangzhou, rather than having been ordered in advance. They are dated from the end of the Southern Song (南宋, 1127~1279) Dynasty to the beginning of the Yuan Dynasty , and they display some traces of abrasion due to having been used for a long period of time. It was confirmed that they had been placed in wooden boxes specially made for these kinds of objects and that they were stored in their own special place for transportation on the Sinan vessel.
Secondly, the retro trend of the Song (宋, 9601~1279) Dynasty continued well through the early Yuan Dynasty. As society stabilized, the demand for antiques such as paintings, ceramics, bronze works, and jade works had increased in the Hangzhou art market, and counterfeit antiques were also prevalent. The ancient ceramics among the Sinan's cargo are considered to be related to the official-ware style ceramics produced in response to the retro trend that prevailed from the late Southern Song Dynasty to the beginning of the Yuan Dynasty, as well as to the vogue for Chinese objects introduced to Japan (唐物趣味) which had spread in Japan during that period.
Thirdly, it is presumed that there were three routes via which the antique ceramic wares flowed into the Hangzhou art market. Firstly, objects handed down by upper class families in the Southern Song Dynasty were disbursed into the market as demand for art objects rapidly increased at the beginning of the Yuan Dynasty, when society and politics were stabilizing. Secondly, ceramics that had been buried in dugouts for safekeeping during the wars from Southern Song until the beginning of the Yuan period appeared in the art market in Hangzhou on a large scale, as society and the economy of the Yuan Dynasty were stabilizing. Finally, as the society of Sichuan Province collapsed due to the wars, massive numbers of people were displaced into different regions including Hangzhou, and among them there must have been antique traders selling ceramics.
Fourthly, several written sources attest to the fact that demand for antiques had been increasing in Japan. Referring to records on Song Dynasty ceramics in Hōjō Sadatoki jū san-kaiki (北條貞時十三回忌, Twelf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Hōjō Sadatoki, 1323) and Butsunichian Kōmotsu mokuroku (佛日庵公物目錄, Catalog of Objects in Butsunichian) from Butsunichian, sub-temple of Engaku-ji Temple (圓覺寺) in Kamakura, written by a Buddhist monk named Hosei (法淸) in 1363,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Japanese people who then frequented Hangzhou were also exposed to the retro trend and the circulation of antiques. And this must have permeated into the lives of the upper classes in Japan. Further study of the selective reception of Japan toward art works in the art market in Hangzhou in the Yuan Dynasty is to be elaborated in the future.
본고는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의 특징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古器物에 초점을 두었다. 우선 신안선에 실린 고기물을 선정하고, 이 고기물들이 신안선에 실렸던 배경과 이동경로를 元代 杭州 미술품 시장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또한 일본의 중국도자기 수요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에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를 비롯한 고기물을 대상으로 당시 고미술품 시장의 역사적 배경과 수요자의 취향과 선택, 그리고 유통경로 등을 살펴보았다. 연구 성과와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안선의 고기물 도자기는 사전에 주문 제작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1~2개의 소량으로 발견되었는데, 항저우 미술품 시장의 현장에서 구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시기적으로는 남송 말~원 초의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오랜 기간 사용하여 생긴 거친 마모흔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기물들은 신안선에 선적될 당시 나무상자를 이용하여 특별하게 포장되었으며, 특별한 위치에 배치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송대의 복고풍의 유행은 원 초까지 이어졌다. 사회가 안정되면서부터 항저우의 미술품 시장에는 회화, 도자기, 청동기, 옥기 등 고기물의 수요가 많아졌으며, 고기물을 비롯해서 이전의 미술품을 모방해서 만든 것도 크게 유행하였다. 신안선에 실렸던 고기물 도자기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唐物趣味와 함께 중국의 남송 말에서 원초에 일었던 복고풍의 유행으로 생산된 관요풍 도자기의 유행과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셋째, 이들 고기물이 항저우 미술품 시장으로 유입된 경로는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항저우에 거주하던 남송 시기 상류층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원 초 정치와 사회가 점차 안정을 되찾은 후, 미술품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으로 유통된 것이며, 또 하나는 남송 시기부터 원 초까지의 전란을 피해 중국 전역의 움집에 묻혔던 도자기가 원의 사회와 경제가 안정되자 항저우의 미술시장에 대거 등장한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전란으로 인해 쓰촨지역 사회가 붕괴되고 다량의 인구가 항저우를 비롯한 각 지역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며, 그 중에는 도자기를 팔았던 古器物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넷째, 일본에서 고기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사실은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입증이 되고 있 다. 1323년의 『北條貞時十三回忌』와 1363년에 法淸이라는 승려가 작성한 가마쿠라 圓覺寺의 佛日庵의 『佛日庵公物目錄』에 기록된 송대 도자기에 대한 기록을 통해 볼 때 당시 항저우를 자주 왕래하던 일본인들도 중국의 복고풍이나 고기물에 대한 흐름을 분명 체감하였으며 일본 상류층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었을 것이다. 원대 항저우 미술시장의 예술품을 대하는 일본의 선택적인 수용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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