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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민족사적 위상 = Koguryeo"s National Place in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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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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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가장 큰 대상국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고구려사는 중국사가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었으며 그 국가적 정체성과 자주성을 폄하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구려의 성격을 크게 대외관계와 사회ㆍ문화(사상 포함)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하였다.<BR> 우선 대외관계로 볼 때, 고구려가 요동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중국(한족 또는 북방민족)에게는 큰 위협적 존재였으므로 한 군현 설치 이후 관구검ㆍ모용황 등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수ㆍ당의 침입도 요동확보를 위한 전쟁이었다. 그만큼 요동지방은 철기의 생산지로서만이 아니라, 중국의 中華秩序 確立에 거쳐야할 동방의 요충이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의 東進에 장벽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북방에서 성장하던 여러 국가들은 요동확보가 국가 생존의 관건이 되었음으로 요동반도 쟁탈전의 불가피하였다.<BR> 이러한 입장에서 고구려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우위권을 장악 하기위해 요동확보 불가피하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는 오와 위(삼국시대)를 견제할 수 있었고 손권(오)은 고구려왕을 單于로 삼고 진귀한 물건을 보냈으며, 특히 남북조 시대의 북위는 고구려를 동방의 대표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수전쟁에서 참패한 중국은 고종의 國書에 당과 동등한 나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당의 침입에 대처하고 있음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BR> 다음으로 사회ㆍ문화적인 시각에서 볼 때 고구려는 낙랑언덕의 사냥(巡幸)이나 패수물놀이를 통해 대중국 전쟁을 대비한 국민적 단결을 꾀했던 것이다. 고구려는 국초에 보이는 관직체제(使者ㆍ對盧ㆍ沛者ㆍ古雛加)를 끝까지 지켜 당의 3성6부를 외면하여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천리장성 축조를 통해 국민적 단결을 꾀할 수 있었고 국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는 중국과 다른 습관과 사회전통(혼납금ㆍ복식ㆍ예절)이 있었으며, 고분벽화의 경우도 중국의 그것과 다른 특징과 함께 서역의 문화까지 흡수하여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였다. 그 외 고구려의 독창적인 祭儀와 천문학, 그리고 의학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기반이 되었다.<BR> 이러한 시각에서 고구려는 만주를 지배한 강국으로서 북으로 송화강, 요하의 북방(유목)문화와 남으로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 문화, 그리고 한강ㆍ낙동강 유역의 백제ㆍ신라 문화까지 융합하여 우리 민족문화의 기반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평양천도 이후 북방을 포기하여 반도국가로 전락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였고, 수많은 산성을 쌓는데 동원된 백성들의 땀과 혼을 외면한 말기의 정치적 분열은 민족국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BR> 고구려는 불리한 지리적 환경과 북방의 여러 민족의 위협 속에서 국가유지를 위한 불굴의 투지와 강인한 단결을 기반으로 국가를 유지하였으며 수많은 산성을 축조함으로서 국민들을 통합 할 수 있는 구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과 말기의 정치적 혼란은 이러한 백성들의 땅과 얼을 외면하게 되었으며 지나친 제ㆍ라와의 갈등으로 나당연합군의 도전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손으로서의 긍지’를 지닌 고구려ㆍ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고구려는 그것을 신라로 이어지게 함으로서 자신은 무너졌으나 한국사의 큰 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BR> <이미지 참조>
더보기Koguryeo was an independent state against Chinese invasions. She was a bulwark for the growth of Shilla and Baekje in Korean Peninsula. She was a ruler of Manchuria region and the target of the so-called East-Northern Project of China.<BR> Koguryeo was a strong empire in fields of diplomacy and culture. In diplomatic history, Koguryeo repulsed Sui and Tang"s invasions. It was a challenge against Chinese World Order, keeping its autonomy and tradition. Accordingly, while resisting China"s march into the East, Koguryeo was able to protect the region of Lia-tung which was a strategic place and key point of China"s control over East Asia. Koguryeo dispatched the missions to China, but it was unlike the so-called tributary system by a kind of practical use.<BR> On the other hand, Koguryeo had social and cultural originalities. Koguryeo erected numerous castles along the Laoheo River against Chinese invasions. And Koguryeo had various murals of their lives including wars, huntings, immoral livings with numerous animals. These paintings are distinguishing marks in Koguryeo"s culture. Also, Koguryeo had a developed astronomy in Asterism and medical science by ginseng. These cultures cultivated the Baekje, Silla and Japan. But the capital transfer to PyongYang caused the decline of the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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