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노사관계 모델 연구
2009년 쌍용자동차의 장기 농성 파업사태는 한국 노사관계의 여러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압축해 보여 주었다. 그 동안 개별 기업 차원의 노사협력 모범 사례들이 많이 축적돼 왔고 정부 차원의 노사협력 지원 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쌍용차의 구조조정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쌍용차의 경영실패와 구조조정을 둘러싼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와 노사 간의 전면전(open war)은 그 내용면에서 쌍용차 노사만의 실패와 대치가 아니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그리고 전투적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시민사회 단체가 한 편이 되고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경제단체가 또 한 그룹을 형성하여 쌍용차 사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쌍용차 노사갈등은 한국노사관계 전체의 갈등구조를 축약했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고스란히 국가차원의 노사관계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쌍용차 사태는 ’87년 이후 한국 노사관계를 특징지어왔던 노사관계의 「’87년 체제」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실증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98년 현대자동차 구조조정 사태 이후 반복되는 사업장 차원의 군사적 대치와 갈등을 노사관계의 틀 안에서 수렴ㆍ조정한다는 것이 한 기업에서의 노사관계 관리문제가 아니라 국가 수준의 노사관계 시스템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차원의 노사관계를 노사상생의 새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포스트 ’87년 체제로 전환하지 않고는 개별 기업수준의 노사관계 전환도 어려울 것이다.
기업 수준에서 상생의 노사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원리는 결국 경영자가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공정한 보상을 책임져 주고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과 생산의 안정을 담보해 주는 관계에 대하여 노사가 신뢰하고 그러한 관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사관계 이해관계의 교환과 타협이라는 핵심원리를 기업 차원의 생산성 연합(productivity coalition)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노사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win-win의 안정적인 거래관계가 형성되어야 相生의 노사관계는 지속가능하다.
일시적인 위기극복을 위하여, 아니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매우 파격적인 불평등 거래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으로 지속될 수 없다. 안정적인 경제적 교환은 공정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사가 추구하는 근원적 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안정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노사상생이란 것이 勞使不二나 勞使간의 이해관계갈등 자체가 소멸되는 상태를 상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더라도 상호 협력하고 서로에 이익이 되는 win-win의 타협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균형상태라고 할 수 있다.
노사 간 경제적 이해관계만의 불안정하고 연약한 타협의 고리(생산성 현합)를 보다 안정화시키고 다층화시키는 제도적 보완장치들이 마련되어야 상생의 노사관계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성되고 신뢰의 연합(trust coalition)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생산성 연합을 보완하는 노사관계 인프라로서 우선 강조되는 것이 노사 지도자의 리더십, 특히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선택과 리더십이다. 최고 경영자의 리더십은 열린경영을 가능하게 하고 노사 간의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활용하여 신뢰와 협력을 정착시켜 나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가 쌓이면서 기업은 단순히 이윤과 임금을 나눠 갖는 이해관계의 집합이라는 인식을 넘어 하나의 생활공동체이자 가치의 공동체로 발전해 갈 수 있게 된다. 갈수록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구성요소가 교육ㆍ훈련 제도이다. 기술변화가 빨라지고 지식기반경제가 도래하면서 기업의 지식축적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변수로 부각되었을 뿐 아니라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지속적인 숙련향상은 자신의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높일 뿐 아니라 보상에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의 이해가 일치하는 구성요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 차원에서 형성된 노사 상생의 협력관계를 더욱 안정시킬 수 있는 외부 노사관계 인프라로서의 거시노사관계 시스템을 환경요인으로 추가할 수 있다. 기업수준 상생의 노사관계 시스템을 환경요인으로 추가할 수 있다. 기업수준 상생의 노사관계 환경조건으로서의 거시 노사관계가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와 같은 사회적 타협 구조를 상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는 오히려 그 타협구조 자체가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상생의 노사관계 구조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관찰되는 바와 같이 국가 수준의 이러한 상생협력(social partnership) 구조를 기업 수준에까지 전파시키기 위한 지원조치들이 동원되는 것이 보통의 예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기업 수준의 노사상생 관계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국가 수준의 노사관계 지원 인프라가 보조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국가수준의 사회적 파트너십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한국형의 유연안전성이 전제되고 있다. ’97년 이후의 노동시장 유연화 양극화 추세를 감안한 한국형의 유연안전성 모델이 자리 잡아야 기업 수준의 노사관계도 안정적인 상생협력 관계가 정착될 수 있다. 이는 구조조정을 둘러싼 극단적인 노사갈등이 결국은 적절한 사회안전망의 결여와 노동시장의 양극화에 기인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만 흔히 제기되듯이 덴마크나 네덜란드와 같은 유연안전성이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과 복지제도에 적합한 모델이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의 유연안전성에 기초한 노사정의 파트너십은 기업 수준의 노사관계를 相生協力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매우 긴요한 환경요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수준의 상생구조 하에서 기업수준의 상생협력 모델이 정착될 수 있고, 기업과 국가 수준의 양 축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상생의 노사관계 시스템이 단결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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