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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시기 백제의 宋ㆍ北魏와의 외교 배경과 그 양상 =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Establishment of Baekje s Diplomatic Relations with Song(宋) and Northern Wei(北魏) during the Hanseong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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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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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년 1월에백제와 동진의 첫교섭이 이루어진다. 근초고왕이후 한성 백제의대중관계는 남조의東晋과宋으로일원화되며, 이후에도남조와의외교는백제외교의기본노선이되었다.백제가 남조와 통교한 것은 동진과 宋 등이 산동반도까지 진출해 와서 백제-산동-강남으로 이어지는 연결루트가 확보된것이 중요한 요인으로작용하였다. 동진과의외교는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조공책봉 관계였으나, 왕권의 안정과 백제의 국제적 위상 정립에 기여하였다.
동진과의 교섭은 근초고왕27년(372)년에서진사왕2년(386)까지빈번하다가 백제가396년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국가적 위기에 놓이자, 20여 년간 단절된 뒤 다시 406년에 재개된다. 단절의 시기 동안 백제 아신왕은 왜국에 사신을 보내며 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宋과의 외교관계는 60년 동안 18회로 구이신왕, 비유왕, 개로왕에 걸쳐 백제의對宋外交가 집중적으로 추진되었다. 의례적인 조공책봉과 더불어 백제에서는 현실적으로 고구려에 대한 견제 및 선진문물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宋과의 외교에 집중하였다. 宋으로서도 북위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백제와의 외교 관계가 필요하였으므로 우호관계를 지속하였다.
개로왕대에 들어와서는 중국 남조이외에北魏와교섭하게된다. 백제개로왕이宋의외교에서 북위와의 외교로 돌아선 것은 宋의 내부 혼란과 469년 이후 산동반도가 北魏에 의해 제압되어 남조와의 연결루트가차단되어宋과의 통교가 어려워졌기때문이다. 宋과통교하기 어려워진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한 위기 속에서 宋 대신 북위와의 외교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백제의 남조 외교 정책은 고구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기존의백제우방국인신라ㆍ왜보다宋과北魏중심의대중외교에집중했던개로왕의외교전략은 고구려의 親宋ㆍ親北魏의 양단정책에막혀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외교정책의실패는 백제가 개로왕 21년(475)에 고구려에게 한성을 함락 당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In January 372, the first negotiation between Baekje and Dongjin took place. After King Geunchogo, Hanseong Baekje s interactions with China came to be conducted exclusively through Dongjin and Song, which was to become Baekje s official policy with respect to its relations with China. Dongjin and Song succeeded in making inroads into the Shandong Peninsula, placing themselves on Baekje s route to Shandong and the Yangtze River region,which in turn propelled Baekje to enter into friendly relations with the Southern dynasties. Baekje s relations with Dongjin were a tributary relationship that was nominal in nature. Nonetheless, the relationship contributed to both stabilizing Baekje s royal authority and consolidating its national stature.
Baekje frequently made contact with Dongjin until the second year of King Jinsa s reign (386). However, their communication had been cut off for nearly twenty years since the year of 396 when Baekje faced a national crisis because of Goguryeo s invasion. It was resumed in 406. During the rupture, King Asin aggressively tried to establish close ties with Japan by sending several envoys to the insular country.
Baekje made contact with Song eighteen times over the course of sixty years including the reigns of King Guisin, Biyu, and Gaero. Other than the obvious benefits from maintaining a tributary relationship, albeit nominal, with China, Baekje wanted to achieve two practical goals through its relations with Song, namely, keeping Goguryeo in check and importing China s advanced culture. As far as Song was concerned, the country was in need of keeping friendly relations with Baekje because of Northern Wei.
During the reign of King Gaero, Baekje began endeavoring to open communication with Northern Wei as well. There were two reasons for King Gaero turning his eyes from Song to Northern Wei. First, Song was suffering from internal turmoil. Second, Northern Wei took over the Shandong Peninsula in 469, thereby blocking Baekje s route to the Southern dynasties and making difficult the communication between Baekje and Song. The fact that Baekje was having trouble communicating with Song and Goguryeo s southern expansion forced Baekje to choose Northern Wei over Song in terms of diplomatic relations.
King Gaero s strategy to focus on establishing close ties with China through Song and Northern Wei rather than its traditional partners such as Silla and Japan in the end failed due to Goguryeo s Song and Northern Wei policies. This failure ultimately led to the fall of Hanseong by Goguryeo in the twenty first year of King Gaero s reign(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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