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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백곡 정곤수의 정치·외교 활동 = A Study on the Baek-gok, Jeong Gon-su’s political and diplomatic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1592-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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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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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4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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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gok, Jeong Gon-su worked a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when Imjin War in 1592 (King Seon-jo 25) occurred. In the middle of the war, he was in high-ranking positions. And he carried out King Seon-jo on the way upto Uiju, Pyeonganbukdo. Jeong Gon-su insisted on asking Ming to send troops to stop the Japanese army. Ming decided to dispatch the troops, but when the dispatch of the army was delayed in practice, Joseon decided to dispatch a special ambassador to Ming to request a prompt dispatch of the troops. Jeong Gon-su went on to Beijing without taking a rest, reducing the envoy schedule in general in China to almost half. In Beijing, he met with Ming’s Secretary of Defense, Shi Xing, to convey the urgent situation of Joseon and asked Ming to urgently dispatch a military force. As a result, he again accomplished Ming’s promise to send the troops and Ming actually dispatched the troops to Joseon. On the way back home, he bought bows and gunpowder with the gift he received from Ming. That weapon was a great help for Joseon to overcome the war crisis. Ming's large-scale military dispatch is said to be one of the driving forces to overcome the Imjin War(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1592-1598), and from that point of view, it is said that Jeong Gon‐su's diplomatic activity in China greatly affected Joseon's destiny. In 1597 (Seon-jo 30), Jeong Gon-su had been to Ming as a special ambassador to explain that the rumor that Joseon and Japan in good spirits would attack Ming was wrong. Jeong Gon-su was a representative of the negotiations between Joseon and Ming during Imjin War. He was also a problem solver between Joseon and Ming, coping with matters such as reporting, making excuses, etc., in the event of a serious incident between Joseon and Ming, which was an affair to influence the fate of Joseon. He was awarded a medal for rendering a meritorious service to Joseon in 1601, and a medal of the first meritorious retainer in 1604. It is the Joseon government's assessment of the role of Jeong Gon‐su during Imjin War.
더보기백곡 정곤수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있다. 전쟁 중에는 계속 고위직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명나라에 원병을 청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청병이 결정되자 전쟁 중에 진주사(陳奏使) 파견이 결정되었다. 정곤수는 사행 일자를 줄여가면서 쉬지 않고 북경으로 나아갔다. 북경에서 병조상서 석성을 만나 간절히 조속한 파병을 청하여 명군의 실제적인 파병이 이루어졌다. 돌아올 때는 하사받은 은으로 궁각과 초황을 구입하여 돌아왔다. 명나라의 대규모 파병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곤수의 사행과 외교 활동은 조선의 명운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곤수는 1597년(선조 30)에는 사은겸변무진주사(謝恩兼辨誣陳奏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정곤수는 임진왜란기 명나라와의 교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진주, 변무 등 조선과 명과의 사이에 중대한 일이 발생되었을 해결사로서 나섰으며, 그것은 조선의 명운을 좌우할 일이었다. 1601년 공신으로 녹훈되고 1604년 호성공신 1등에 녹훈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정곤수의 역할에 대한 조선정부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곤수는 중앙의 정치 현장에서는 동생인 정구에 비해 오히려 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쟁 이후 정곤수는 이제 영남 남인 출신의 현직에 있는 인물들 가운데 저명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정곤수는 정치적 사안에 따라 대북이나 서인계와는 다른 의견을 내 놓았다. 이로 인해 다른 당파로부터는 매우 부정적인 논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선조대 격화된 당파적 관점이 남인계 출신인 정곤수에 대해 비판적으로 투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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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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