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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시 申適道와 曺守誠의 『倡義日記』를 통해 본 영・호남의병 = Analysis of Ui-byeong in Yongnam and Honam Area, using Shin’s and Jo’s Wartime Diary(Chang-ui Diary) during the Ching’s Invasion in 1636
저자
유창규 (남부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13-136(24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The diary of Shin, Jeok-do and Jo, Su-seong is important and rare material to help us understand the guerrilla force during Byeongja-horan, the second war occurred from Ching’s invasion. Shin, Jeok-do and Jo, Su-seong were guerrilla leaders at that time. Their diary deal with various aspect of ui-byeong(Guerrilla force),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their guerrilla force. Their diary tell the reason and process why they created the guerrilla force, what were the components of the guerrilla force and its activity. Also, difference between ui-byeongs in Honam and Yongnam area.
Shin’s diary is mainly about the situation at that time, also briefly depicting guerrilla component and training. Shin’s force was located in Ui-seong and quite massive. It’s main objective was to reach Namhansanseong(the refuge of Joseon King, In-jo) independently and secure it. The objective is partly the reason for their early dismissal right after their failure to secure it. Shin strongly opposed to the truce. His troop was completely relied on the Confucian theory of expulsing barbaric outlanders.
Jo’s diary depicts the enlistment of guerrillas and supply, training content and troop movement in detail. Jo’s background as a minority gentry affected the whole process of his guerrilla force. He stressed training which didn’t rely on the other force. Because of his background, his troop didn’t get assistance from other troops. That is the reason why his troop had to be a minor force, regardless of the troop’s outstanding organization and personnel.
Shin’s and Jo’s objective was not for coordinated battle. Shin’s troop swiftly moved toward Namhansanseong and Jo’s troop concentrated on preparation. Jo’s troop sometimes participated in the coordinated battle but its main focus was independent battle. Shin and Jo’s minor background as a Nam-in fraction was the reason why they couldn’t be the main guerrilla force.
인조 14년(1636) 청의 침략으로 병자호란이 발생하였다. 가까스로 남한산성으로 피한 인조는 의병을 일으키도록 하였으며, 이에 호응하여 각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았다. 그나마 병자호란 시 의병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호남의병을 통해 알 수 있다. 호남의병에 관한 내용도 호남 전체를 아우르기보다는 각 진영 별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호남의병에 비해 경상의병은 더 더욱 구체적인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 경상도 의성의 신적도와 전라도 화순의 조수성이 남긴 의병일지는 병자호란 시 의병의 구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는 데 주요한 자료이다. 신적도와 조수성의 의병일지는 의병을 일으킨 시점에서부터 집으로 귀향하기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일지를 통하여 이들이 의병을 일으킨 과정과 이유, 의병에 참가한 구성원, 활동 등에 대한 대략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에서 일어난 의병진의 차이도 엿볼 수 있다.
신적도의 일지는 의병의 구성원과 훈련 등에 관한 내용은 소략하며, 주로 그가 접한 당시 상황이 중심이 되어 있다. 신적도의 의병진은 의성현에 국한되었지만 상당한 규모였으며, 관이나 다른 지역 의병과 협력하지 않고 인조가 있던 남한산성을 향해 나아하는 것이 일차적인 주요 목표였다. 왕이 있는 남한산성 보위가 주요한 기치가 된 셈이다. 화의 논의가 일어나고 의병이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자 다른 지역 의병과 달리 곧 해산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지 않나 여겨진다. 신적도는 출정 도중에도 정국의 상황을 끊임없이 접하였으며, 오랑캐인 청과 화의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결국 그가 의병을 해산한 채 홀로 남한산성 들어간 것도 화의의 불가함을 피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의 의병진은 성리학적 명분과 화이론에 철저하게 기대고 있었다.
조수성의 일지는 의병을 모집과 군수물자를 확보하는 과정, 그리고 훈련 내용과 진격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인 중심의 호남 정서와 서인으로부터 엄청난 수난을 당하였던 동인 가계 출신이라는 점이 조수성의 의병 거의 과정에 작용하였으며, 조수성은 독자적인 전투를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집안 인물을 중심으로 의병 모집과 군수물자 조달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화순 지역 유생들의 도움이 보태져 구성된 조수성 의병진은 관이나 호남 지역 다른 의병진과 협력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다른 호남의병과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움직였으며, 비록 화순현감의 협조를 받기는 하였지만 관으로부터 도움이나 정보를 듣지 못하여 마치 별동 부대인 것처럼 활동하였다. 조수성 의병진이 다른 호남의병에 비해 조직과 인원에서 뛰어났음에도 후대 병자호남의병의 주축으로 자리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요인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적도와 조수성의 의병은 다른 의병과 합세하여 적과 전투를 치르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신적도는 화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남한산성을 향해 신속하게 나아갔으며, 조수성은 적과 전투를 염두에 두고 준비 과정에 노력하였다. 다만 조수성은 호남을 아우르는 호남의병진과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비록 다른 호남의병과 협력하더라도 자신의 의병진이 갖는 독자적인 전투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호남의병은 서인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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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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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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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6-1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 KCI등재 |
2006-03-2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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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6 | 1.183 | 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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