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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명군지휘부의 조선에 대한 요구와 간섭 = The Demands and Interference of Ming’s Military Command of Jose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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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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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52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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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구원군’을 표방하면서 조선에 참전했던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명군 지휘부는 이후 ‘군사 顧問官’으로서 조선에 대해 이런저런 요구와 훈수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명군 지휘부가 제시한 요구와 훈수들의 내용은 戰況의 추이, 명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군이 아직 조선에 진입하지 못했거나, 진입했어도 일본군과의 전투를 시작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명군은 대체로 ‘구원군’의 모습을 보였다. 1592년 祖承訓의 휘하 병력이 들어오기 이전의 경우와 李如松이 지휘하는 병력이 들어오기 이전의 경우가 그러했다. 명은 당시, 조선이 일본군에 의해 멸망되는 것을 우려하여 宣祖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저항할 것을 주문하고, 조선 백성들에게도 義兵을 일으켜 저항할 것을 강조했다.
명군은 조선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부터 ‘自衛軍’, ‘占領軍’의 모습을 드러냈다. 1592년 7월 조승훈군이 평양에서 참패했을 때, 1593년 1월 이여송군이 벽제에서 패했던 직후, 1597년 정유재란 직후 經理 楊鎬가 조선의 분전을 독려할 때는 ‘점령군’으로서 갖가지 요구들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가장 빈번했던 것은 糧草를 제 때 공급하라는 것이었다. 또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했을 때, 명 조정에서 講和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명군 지휘부는 ‘요구’를 넘어 ‘명령’과 ‘질책’, 내정 간섭 수준의 주문들을 조선에 강요했다. 1593년 광해군에게 군사 문제를 전담하라고 요구한 것, 1594년 “조선도 일본과의 강화를 원한다”고 명 황제에게 上奏토록 한 것, 명이 조선을 직접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 1597년 경리 양호가 조선의 허술한 방어 태세를 성토하면서 ‘차라리 일본에게 땅을 떼어 주라’고 극언을 퍼부었던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강화 협상으로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섰을 무렵,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명군 지휘부는 朝鮮善後事宜로 대표되는 다양한 훈수를 제시했다. 그것은 文弱을 극복하고 武備를 키울 것, 銀鑛을 개발하고 화폐를 유통시켜 國富를 키울 것, 세금을 경감하고 형벌을 절제하여 백성들을 안정시킬 것, 노비를 해방시키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 다양했다.
요컨대 임진왜란 시기 명군은 ‘구원군’으로 조선에 참전했지만 조선에서 실제 보여준 것은 ‘점령군’, ‘자위군’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일본군을 조선에서 저지하여 遼東을 비롯한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참전했던 그들의 본래 의도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Claiming to be acting as an army of ‘salvat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Ming’s army commanders who served in Joseon took operational control of Korean troops. Ming’s army commanders issued these and other requirements for Joseon as a ‘military advisors’ since then.
However, the nature of the request and meddling of Ming’s army commanders were revealed through the changes in the battle situation and Ming’s internal political situation. Ming’s army commnaders generally showed the appearance of acting as an army of ‘salvation’ in that Ming didn’t start the battle against Japan whether Ming sent troops to Joseon or not yet entered Joseon. Examples include previous cases in which Zuchengxun(祖承訓)’s commanding troops came into Joseon and Leerusong(李如松)’s army entering Joseon. At that time, Ming ordered Joseon to resist to the end, not give up and also urged people of Joseon to raise an army in the cause of justice because Ming was concerned that Joseon would be destroyed by Japan. Since Ming came to Joseon and battled Japan, Ming assumed the appearance of self-defense troops and occupation forces.
In July 1592 when Zuchengxun’s army was defeated in Pyongyang and in January 1593 shortly after Leerusong’s army was defeated in Byeokje(碧蹄), Ming poured forth all sorts of demands as ‘occupiers’ when Jingli(經理, Chief commander) Yanghao(楊鎬) encouraged Joseon to fight fiercely in 1597. One of the most frequent demands was to timely supply provisons for the army and give fodder to horses. And when Ming lost the battle with the Japanese and when intense debates over peace settlement was going on, Ming’s army commanders forced orders and reprimands far beyond its actual support level and beyond just ‘demands’ for Joseon. Asking the prince Gwanghae(光海君) to dedicate to military matters in 1593, accusing that “Joseon wants to make overtures for peace with Japan” to the emperor of Ming Dysnasty in 1594, claiming that Ming should directly govern Joseon, and making spiteful remarks like ‘rather give away the land to Japan’ were prime examples.
Meanwhile, when the war entered a lull through peace talks and Japanese military withdrew by the end of the war, Ming’s army commanders presented a variety of interference in Joseon in the name of Chaoxianshanhoushiyi(朝鮮善後事宜. future measures to establish Joseon appropriately). Such were conducted in the guise of overcoming effeminacy, upgrading military equipment, developing silver mines and increasing the wealth of Joseon through putting money into circulation, stabilizing the Joseon population by reducing taxes and moderating punishment and engaging men of ability.
In short, Ming gave the appearance of being a self-defense force and military occupiers when fighting in Joseon while advocating a ‘salvation army’ during the Imjin War(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1598). And that was the inevitable consequence arising from their original intent to secure its safety and Liadong province by blocking the Japanese army in Joseo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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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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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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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5 | 0.75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2 | 0.59 | 1.314 | 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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