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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 미,소 군정기(1945~1948) 서울과 평양의 극장연구 = A Study on the Theater during Military Government(1945~1948) and Its Implications for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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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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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349.9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99-230(32쪽)
제공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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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문화인들은 발빠르게 움직여 ``문화건설``을 조직했다. ``문화건설``의 목표는 일본 잔재를 털어내고 봉건문화를 근절하여 근대 민족문화를 건설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영화인들도 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쳐 1945년 12월 전체 영화인의 모임인 ``조선영화동맹``으로 결집하여 문화건설에 힘을 보태었다. 그러나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조선의 영화산업의 조건에서 조선의 영화는 강력한 미·소군정의 문화정책 아래에 놓였다. 이 연구는 정책, 산업, 문화형성의 공간인 극장을 통해 군정 당시 남북에서 극장정책과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었던 적산극장 처리문제의 비교, 당시 서울과 평양의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와 상영방식, 그리고 그 함의를 분석하였다. 미군정기 서울의 극장은 16개에서 점차 증가하여 18개에 달했다. 여기서 극장은 연극, 악극, 전통연예물들이 영화와 함께 상영되는 공간이었으며 외화의 상영비율이 높았다. 외화 중에서도 미국영화는 미군정이 설립한 중앙영화배급사를 통해 거의 독점적으로 배급되며 극장을 점령했다. 점령국에 적합한 영화로 선정된 액션, 멜로, 코미디류의 미국영화는 미국이 외국에 전파하고 싶은 자국의 이미지―강하고 아름다운 미국―를 구성하는데 주효한 역할을 했다. 소군정기 평양의 극장은 6개에서 출발해 점차 증가했다. 남한에서와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연극, 악극, 가극 등이 동시 상연되었으나 점차 영화관과 공연장의 개념이 분리되기시작했다. 3·8선으로 인해 남한에서부터 영화수급이 막히자 평양의 극장을 점령한 것은 거의 소련영화였다. 소련영화는 사회주의 이후 소련의 변화상, 꼴호즈, 협동노동, 공업화등 사회주의 근대화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미군정과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남한은 경쟁과 자본화가 심화되고 미국영화를 통해 일상적으로 미국문화에 점차 익숙해졌다.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놓이게 된 남한의 극장과 달리 북한의 극장은 국영화되어 상업활동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소련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문화적 역할에 주력하게 되었다. 영화가 보여준 미국과 소련의 이미지는 조선의 대중들이 근대 민족문화를 상상하는데 하나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미·소군정이 조선에 소개한 영화를 통해 남북의 대중들이 근대성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남북의 문화는 점차 상이한 구성과정을 경험했다. 이와 같이 정치·경제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화 기반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군정기의 문화연구는 현재 남북 문화의 이해를 넓혀주는 고리가 될 것이다.
더보기This study analyzed the comparison of the problems to deal with JeokSan Theater(return properties) which was at the center of heated debate in relation to the theater policies in South and North Koreas at the time of the military government through the theater where was the space of the formation of policies, industries and cultures, the films which were projected in theaters in Seoul and Pyeongyang, and the projecting method, and the implication. During U.S. military government period, the theaters in Seoul amounted to 18 theaters by increasing gradually from 16 theaters. Here, the theaters were the spaces where plays, musical dramas, entertainments along with films were shown, and the screening rates of foreign films were high. U.S. movies in also foreign films occupied the theaters by being distributed almost exclusively through Central Film Distributor which U.S. military government established. U.S. movies of action, melo, comedies, which were selected as the movies suitable for the occupying nation, played a prominent part in organizing its own country``s image - the strong and beautiful U.S. - which U.S. wanted to spread to foreign countries. During Soviet military government, the theaters in Pyeongyang increased gradually after starting with 6 theaters. Though plays, musical dramas, operas were shown simultaneously in the theaters as well as in South Korea, the concept of a movie theater and a performance hall began to be separated gradually. when the movie supply from South Korea was blocked because of the 38th parallel, Soviet movies occupied most theaters in Pyeongyang. Soviet movies showed the results of socialist modernization such as Soviet change after socialism, kolkhoz, cooperative labor, industrialization. Under the influence of U.S. military government and U.S. culture, South Korea got more deeply in competition and capitalization, and got used gradually to U.S. culture every day through U.S. movies. In contrast to the theaters in South Korea placed on the market principle of capitalism, the theaters in North Korea gave commercial activities a wide berth according as they were nationalized and focused on the role of the culture under socialism which Soviet required. The images of U.S. and Soviet which the movies showed became a barometer for people in Korea to image the modern nation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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