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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근대-남북한의 식민지 반봉건론을 다시 생각한다- = Modern in Periphery -Rethinking the Theory of Colonial Semi-feudalism in North and South Korea-
저자
홍종욱 (同志社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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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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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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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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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9(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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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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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we go back to the idea that ‘colony = modernity’, on which the theory of colonial modernity is based, and consider the colony as a field in which the heterogeneous time and space of Europe and Asia became intertwined, we have to acknowledge there are similarities between the theory of colonial modernity and the theory of colonial semi-feudalism, which had a major influence on the Korean academic world in the 1980s. The two theories are similar in that they pay attention to the heterogeneity and inequality of capitalism, or the modern.
The key point of ‘the controversy on the unification of China’ in mid-1930's Japan, was how to understand coloniality. Tadao Yanaihara insisted on the theory of modernization or decolonization, and Suehiro Okami’s theory was close to that of stagnation without considering coloniality. Tsutomu Nakanishi focused on the duality of Imperialism during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in semi-colonies and the people’s resistance resulting from it, criticizing both Okami and Yanaihara.
Jeong-sik In’s theory was close to that of Okami in that it considered Korea as semi-feudal, placing emphasis on its stagnation. However, Mun-gyu Bak and Mun-byeong Bak, considering the influence of coloniality, recognized both the possibility of differentiation in agriculture and feudalism as strengthened by Imperialism. After his conversion, In recognized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in Korea and denied the fact that Korea was a colony.
The conclusion of ‘the controversy on the periodization of the modern’ in North Korea in 1962 can be summarized as ‘colonial semi-feudalism = modern’. It appeared to be a compromise between the theory of social economic formation and the theory of class struggle. As the historiography of self-reliance (juche) gained momentum in the 1980s, the theory of class struggle was fully adopted and the division between modern and contemporary was changed from the liberation in 1945 to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indicating that anti-colonialism ironically lost substance as a result of its emphasis on self-reliance (juche).
In South Korea, Byeong-jik An was strongly opposed to the idea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capitalism, including the theory of the bud of capitalism. In An’s theory of colonial semi-feudalism in the 1980’s, we are able to recognize his endeavor to explain the colonial experience escaping the formula of historical materialism and the theory of modernization. In contrast to Byeong-jik An, Hyeon-chae Bak and Hideki Kajimura criticized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capitalism after once recognizing it.
In 1989, Byeong-jik An published a paper in which he evaluated the development of Korean capitalism from his belief in desubordination. His change meant that he gave up trying to explain coloniality. An’s change can be viewed as a shift from Suehiro Okami to Tadao Yanaihara’s ideas in the controversy on the unification of China and can also be compared to Jeong-sik In’s conversion in colonial Korea. The difference between Byeong-jik An and Hyeon-chae Bak or Hideki Kajimura lay in the question of whether or not colonialism and the people’s resistance were considered.
‘식민지=근대’라는 식민지근대론의 원점으로 돌아가 식민지를 서구와 아시아라는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장소로서 파악한다면,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를 강타했던 식민지반봉건론의 문제의식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두 이론은 근대 혹은 자본주의의 비대칭성, 불균등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벌어진 ‘중국통일화논쟁’의 핵심은 식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근대화론 혹은 식민지탈화론의 입장이었고, 오카미 스에히로의 논의는 식민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정체론에 가까웠다. 나카니시 쓰토무는 양자를 비판하면서 반식민지의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의 제국주의의 이중성과 그에 따른 민중의 저항에 주목하였다. 식민지조선의 인정식은 조선을 ‘반봉건제’ 사회로 보면서 그 정체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카미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박문규나 박문병은 식민지라는 규정성을 중시하면서, 제국주의에 의한 봉건제의 유지·강화와 아울러 농촌 사회 분화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 전향 이후 인정식은 조선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인정하면서 조선이 식민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북한의 근대사 시대구분 논쟁은 1962년 ‘식민지반봉건=근대사’라는 형태로 총화되었는데 이는 사회구성설과 계급투쟁설의 결합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80년대 주체사관이 본격화됨에 따라 계급투쟁설이 전면적으로 채택되어 근현대의 분기점은 1945년 해방에서 1919년 3.1운동으로 변경된다. 주체가 강조되면서 역설적으로 반식민주의가 형해화된 셈이다. 한편 안병직은 자본주의 맹아론을 포함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안병직의 식민지반봉건론에서는 근대화론이나 사적 유물론의 공식에서 벗어나 식민지 경험을 설명하고자 하는 고민이 엿보인다. 박현채나 가지무라 히데키는 안병직과 달리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인정한 위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989년 안병직은 한국의 NICs적 성장에 주목하여 탈종속의 전망 아래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적 발전을 평가하는 글을 발표한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은 그가 식민성을 해명하는 문제를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중국통일화논쟁에 비유하자면 오카미에서 야나이하라로의 방향 전환에 해당하고, 식민지기 인정식의 전향과도 흡사하다. 안병직과 가지무라 혹은 박현채의 차이는 식민주의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민중의 저항을 인식했는가에 있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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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10-19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Literary and Cultural Studies)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7-05-08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 INAKOS(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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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3 | 0.73 | 0.8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 | 0.78 | 1.756 | 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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