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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광해군의 대외정책(對外政策) 재론(再論) = A Reappraisal of Gwanghagun`s Diplomatic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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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0.911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1-228(58쪽)
제공처
소장기관
광해군이 재위했던 무렵은 명과 청이 교체되는 시기이자 일본의 힘이 급격히 커져 가고 있던 시대였다. 신흥 강국 일본이 당시 쇠퇴하고 있던 명 중심의 中華秩序에 도전하려 했던 전쟁이 임진왜란 이었다. 조선은 명군의 참전과 원조를 통해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종전 이후 후금이 부상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후금의 도전에 직면한 명이 조선을 끌어들여 후금을 견제하려고 시도하면서 조선은 딜레마에 빠진다. 특히 명이 왜란 당시 조선에 베푼 ‘은혜’를 내세워 후금과의 대결을 강요하고, 대다수 조선 지식인들마저 그에 동조하자 조선의 선택지는 더욱 축소된다. 광해군은 이처럼 엄혹했던 환경에서 ‘詐術’로써 명을 기만 해가면서까지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시도했던 군주였다. ‘만세불공의 원수’인 일본과 국교를 재개했던 것, 주변 국가들의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부심했던 것, 조선의 내부 사정을 유출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후금의 침략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방어 준비에 힘썼던 것 등은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광해군이 모문룡(毛文龍)에게 취했던 정책이다. 모문룡은 자신이 ``대국의 장수’임을 내세워 조선을 길들여 자신의 ``접제(接濟) 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모문룡이 ``사기꾼’이자 ``시한폭탄’이란 사실을 정확히 간파했다. 그래서 모문룡을 설득하여 가도(枷島)로 밀어 넣어 조선과 그의 안전을 동시에 도모하고, 수많은 료민(遼民)들을 명 본토로 송환하려 시도했다. 조선에 대해 ``상국’이자 ``은인’으로 자부하고 있던 명을 상대로 과감하게 이런 정책을 썼던 것은 보통의 용기와 배짱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 내정의 난맥상을 이유로 광해군의 대외정책을 폄하할 수도 있다. 그가 궁궐(宮闕) 영건(營建) 등 토목공사에 몰두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외교에서 보여준 그의 고심과 수완까지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광해군이 취했던 대명정책(對明政策), 대후김정책(對後金政策), 대일정책(對日政策)은 모두 임진왜란을 경험하고 학습한 사람이 가야 했던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를 몰아낸 인조 정권이 모문룡이라는 ‘국제사기꾼’에게, 더욱이 ‘조선(朝鮮) 습취(襲取)’까지 운운했던 적대적 사기꾼에게, 또 후금과 내통하고 있는 이신(貳臣)에게 ‘코가 꿰어’ 끝없이 끌려 다니다가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맞이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요컨대 광해군은 분명 외교에 관한 한 재조명이 절실한 ‘문제적 군주’인 것이다.
더보기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gun(1608∼1623), the rapid growth of Houchin(後金) and its political and military challenge toward Ming shook the relation between Choson and Ming. Choson under the reign of Gwanghagun tried to appease Houchin and evade its invasion. At that time, there were two important problems for Gwanghagun to solve. One was to take proper step of defense against Houchin`s invasion, and the other was to avoid Ming`s forcible demand to have Choson pick a quarrel with Houchin. In 1618, Ming forced Choson to enter in the war with Houchin. Gwanghagun tried to devise all the measures to avoid entering in the war, in vain to fail. After ``Shimha battle``, the war with Houchin in 1619, Ming reclaimed the military aid to Choson. But Gwanghagun snubbed the demand, also rejecting to accept Ming`s refugees who had lived in Liaodong area and were driven into Choson by the war, as well as evading to help Mao Wenlung(毛文龍), a general of Ming. These policies were devised to have a harmonious relations with Houchin. The remarkable diplomatic ability of Gwanghagun was formed through the experience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e observation of his father Seonjo`s foreign policy to Houchin. His foreign policy, however, had a limit not to harmonize with the domestic policy. At once refusing Ming`s draft and mapping out a defensive strategy, he built a great palace, which deepened financial straits. He defied public opinion that the excessive palace engineering should be done away with. This obstinacy of his provided his opposition party with the cause of trouble. Soon he had but a few intimate subjects to assist him, later even they turned their back from Gwanghagun. Finally Gwanghagun was collapsed by ``Injo Banjeong``, a military coup d etat in 1623. Gwanghagun`s failures in domestic administrations should be criticized extremely. But his diplomatic policies toward Ming, Houchin, and Japan were cautious and inevitable, and excellent. Why? Because the Choson, surrounded by powers on three sides, had no choice but to resort to clever diplomatic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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