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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총독부 아편정책의 실상 = The Fact of Opium Policy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in the 1910s
저자
박강 (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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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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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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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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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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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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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Japan occupied Joseon, how did opium problem changed? In the Residency-General, Japan already mentioned that opium problem was one of three evils in Korea and it must be eradicated. Japan had ruled Taiwan and the Kwantung Leased Territory in which opiun was rampant. So Japan had a lot of experience and perception about opium problem. Then how did Japan handle opium problem of Joseon? In this paper, the actual conditions of opium policy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will be apprehended in the 1910s, the early years of Japan's occupation. So it will be deeply understanded that what was the direction Japan's opium policy in Joseon aimed to and What is the fact that Japan intended through opium policy.
In the 1910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was poorly prepared for opium policy and the direction of policy was clesrly not set. In outrageous situation Japan pushed opium policy for making profit. As a result Japan underwent trial and error. The policy brought about repeated failure.
Originall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planed to crack dawn on opium. Because Japan worried that opium problem unsettled would result in a socially and economically disadvantaged.
But Japan already made a huge profit from opium monopoly in Taiwan. That was attractive. So Japan Was forcedly willing to enforce opium policy in Joseon. Because Japan didn't understand the situation of Joseon's opium, The opium policy fell apart.
After the First World War Japan also was willing to make the Colonial Joseon opium production base for opium demand of East Asia. This policy also ended in failure.
At that time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needed the policy for creating income through opium. So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manipulated or interpreted the situation arbitrarily. These had no choice but to lead to successive failure and side effects.
Finally in the 1910s outrageous policy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the Joseon made the public lose confidence in opium policy. Furthermore that caused a serious social problem of morphine poisoning in the Colonial Joseon in the 1920s.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이후 조선의 아편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통감부 시기에 이미 일본은 조선에서 근절해야할 세 가지 폐단 가운데 하나로 아편문제를 지목하였다. 아편이 만연된 대만과 관동주의 지배를 통해 아편문제에 관한 경험과 인식을 갖고 있던 일본은 조선의 아편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조선 강점 초기인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편정책 시행의 실상을 파악하여 일본의 조선 아편정책이 지향했던 방향과 그 의도를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일제의 조선 강점 초기인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편정책을 보면 공간된 자료와 내부자료 사이에 차이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1912년 아편의 폐습을 근절해야 한다는 대외적 표방과는 달리 내부자료에서는 식민지 조선에서 아편을 단속하는 목적은 식민지 개발에 있어 장해가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1차 대전 발발 직후 식민지 조선을 ‘아국’의 약품 자급정책을 목적으로 의료용 아편의 생산지로 지정했다고 대외적으로 공개하였지만 내부적으로 범위는 국내가 아니었다. 내부자료를 통해 보면 아편을 통한 일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당초 주장한 범위를 넘어 조선을 동아시아와 남양의 마약 생산 공급지로 삼고자 하였다.
또한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편정책에 대해 이 시기 언론과 일부 극비문서를 통해 그 실태를 살펴보면 공간된 아편자료의 내용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간된 아편자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통해 1914년 1월에 조선총독부는 대만과 같이 收入을 목적으로 아편전매를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내부의 반대 의견과 기타 사정 등에 의해 무산되었던 사실이 있었다. 또한 1차 대전 발발 이후 일본 세력권에 필요한 의료용 약품의 자급정책을 명분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아편을 대대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1919년 6월에 조선아편취체령이 발포하였다. 그러나 당국의 정책 실패는 물론 안일한 대처와 단속의지 부족 등으로 인해 오히려 모르핀 중독환자만 양산시키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였다.
요컨대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편정책은 정책에 대한 준비나 방향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익문제와 연계시켜 추진함으로써 시행착오와 정책 실패를 거듭하였다고 하겠다. 당초 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아편문제를 방치할 경우 통치하는데 있어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단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만의 높은 아편 전매수입에 매력을 느껴 조선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아편전매제를 추진하려다가 무산되었다. 또한 1차 대전 발발 이후 식민지 조선을 동아시아 지역에 필요한 마약의 공급지로 주목하여 아편증산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당시 일본과 조선총독부는 아편을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한 정책의 필요에 따라 상황을 조작 내지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이로써 연이은 실패와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은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아편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은 물론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모르핀 중독문제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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