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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南地域의 奇正鎭 門人集團의 分析 = The Analysis of Gi Jung Jin(奇正鎭)'s Disciples in the Honam Region
저자
김봉곤 (국사편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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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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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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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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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27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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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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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mid nineteenth century, Gi Jung Jin taught many disciples who were from most parts of the Honam region. Basically, the group of his disciples formed due to his high level of academic achievement and his long, 40—year teaching career. Not only that, the formation was closely related to several other reasons: 1) the sense of loyalty and filial piety were called for more than before, 2) the educational demand increased as GwangJu(光州) and JangSeong(長成) became the center of transportation and developed economically, and 3) Gi's family that was founded on PilamSeowon(筆巖書院) grew to the influential center of Nohron(老論—one of the parties) in the Honam region. Since being one of his pupils meant that a person could get some degree of academic achievement and social status, and he could thus be connected with the prominent scholars in the GiHo(畿湖) region, many prospective students sought after to him.
Besides Nohron, Gi's disciples consisted of the members of Sohron(少論—one of the parties), Namin(南人—one of the parties), and the common people. That was because he accepted disciples no matter what parties they were from or which social class they belonged to. Although among his disciples, there were not many who passed “Kwagŏ,” the state examination during the Chosŏn Dynasty, they could comprehend Sung Confucianism fully and obtained the ability to lead their local communities. They committed themselves to their studies their original place of residence. Then the number of these people was remarkably increased through generations so that the school of Nohsa(蘆沙學派) was established firmly in the Honam region. Even when modern science was spreading gradually in Honam, they considered it as an invasion from Japan, and kept to their studying and teaching with a sense of duty to protect their sovereignty and Sung Confucianism.
Gi's disciples held his philosophy of Ju—Ri (主理論) and the Confucian custom and carried them out. Particularly, when the followers of Song Byong Seon(宋秉璿) and Jeon Woo(田愚) attacked Gi's Ju—Ri philosophy as running counter to Lee Yi(李珥)'s philosophy, Gi's disciples claimed that Gi's theory succeeded the essence of Lee Yi's philosoohy. In addition influenced by Gi's Ju—Ri, they called for the social reforms represented by land reform, and carried on the movement of Wi—Jung—Cheok—Sa(衛正斥邪運動). Late in Joseon, they accepted the World General Public Law(萬國公法), and rallied the troops associated with common people resisting against the Japan's occupation. After Gi Sam Yeon died, they took the self—purification act, but many of them made efforts to regain sovereignty by establishing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or by making mass—media or socialist movements against Japanese oppression. These new movements boosted national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ntributing to the democratization of Korea.
19세기 중엽 호남지역에는 기정진의 강학활동에 의해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그의 문인집단은 기정진의 뛰어난 학문능력과 거의 40여년에 걸친 가르침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지만, 호남지역에서 정조 이후 많은 가문들의 충절과 효행의식이 고양되었고, 광주와 장성 일대가 점차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교통의 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교육적 수요가 발생하였으며, 筆巖書院 일대의 기정진 가문이 세도정치기에 호남 지역의 노론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기정진과 사제관계를 통해 그들은 중앙정계의 인물이나 기호지방의 저명한 유학자와 연결될 수 있었고, 사회적 지위나 학문적인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찾아와 수학하였기 때문이다.
기정진의 문인들은 노론 외에도 소론, 남인, 평민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기정진이 특정 당파나 신분에 구애없이 문인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기정진의 문인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한 자는 많지 않았지만, 기정진의 가르침을 통해 성리학에 대해 이해하고 향촌 사회를 이끌어갈 학문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열심히 강학에 전념하여 재전 삼전으로 가면서 문인수가 많이 늘게 되어, 노사 학파가 굳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록 호남 지역에 근대학문이 점차 보급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학문을 일제의 침략으로 간주하여 성리학과 국권을 수호한다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기정진의 문인집단은 기정진의 주리론과 유교적인 예속을 강하게 주장하고 실천하였다. 특히 宋秉璿과 田愚의 문인들이 기정진의 주리론을 李珥의 학설에 위배된다고 공격하였을 때, 기정진의 문인들은 기정진의 철학이 오히려 李珥 철학의 근본 정신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기정진의 문인들은 기정진의 주리철학의 영향을 받아 토지 개혁 등 근본적인 사회 경제개혁책을 주장하였으며,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해갔다. 한말에는 萬國公法을 받아들이고, 평민층과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 奇參衍이 죽은 후에 그들은 대부분 자정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일제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언론활동,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여 국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운동들은 일제하에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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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20-03-2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Honam Study Center -> Institute of Honam Studies | KCI등재 |
2019-06-2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호남문화연구 -> 호남학외국어명 : The Journal of Honam Area Studies -> The Journal of Honam Studies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8-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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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신청제한 (등재후보1차) | |
2009-06-28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of Honam Area Studies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8-08-18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호남문화연구소 -> 호남학연구원영문명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Honam Culture Research Center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Honam Study Center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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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2 | 0.32 | 0.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8 | 0.41 | 0.508 | 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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